오늘 새벽 집에 오는 길에 예상치 못한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모르는 번호지만 낯설지 않은 번호입니다. 받아야 할 것만 같은 번호입니다. 조심히 받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너무도 익숙해서, 또 그 동안의 빈 공간이 너무도 낯설어서 그냥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한동안 서 있다가 그냥 끊었습니다. 참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이미 1년도 더 지난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는 것. 서로가 끝이날 때, 모든 마지막이 그렇듯 헤어지자 말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감당해 내야 하는 사람이나 감내해야 했던 상처와 아픔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자리에서 수 많은 사람들로 상처를 덮어냈다 말하는 거짓과 위선들.
그 모든 거짓과 상처와 변명들 앞에서 그리고 당신 앞에서 해야 할 말을 잊었는지 모릅니다. 그 전화를 나는 왜 아무말 없이 끊었을까. 단순한 당황스러웠다 말하는 감정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시 그 감정을 꺼내서는 안된다는 이성적 판단과 나의 이 평온함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이었겠죠.
나는 수개월 전 이미 당신이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여행도 하고, 또 다른 좋은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기분이 좋지만은 않더군요. 그래도 그날 밤은 당신을 위해, 과거와 현재가 아닌 당신의 미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할 수 있는 유일함이자 가장 큰 일이었죠.
당신이 불행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슬픔과 아픔이 있길 원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길 바라지만, 이는 위선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당신이 나 없이 행복하지 않고, 슬프고, 아프길 원하는 마음도 아직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냥 지저분한 집착의 증거이겠죠.
당신의 부모가 나에게 했던 말들과 행동들이 기억납니다. 그 기억은 지금도 아프게 남아 있지만, 나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부모가 지금 너무도 감사합니다. 마음 한편에는 그 말들과 행동들이 틀렸음을 나의 삶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힘이 됩니다.
우리가 과거에 빠져 살지 않길 바랍니다. 내가 그 연락을 받았다면, 그 연락을 받고 우리가 즐겁게 통화했더라면, 이후에 다시 관계가 혹시라도 회복된다면, 그것이 서로에게 좋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더 좋은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관계를 맺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길 바랍니다. 그것이 늦게나마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함입니다.
행여나 당신이 볼까 어디에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보지 않기 원하는 마음에 당신이 절대 불 수 없을 이곳에 나의 속 이야기를 꺼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