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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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면서 남편으로서 제 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혼자 오래 살았던 나에게 누군가와 함께 같은 방에서 살아간다는 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제 2의 인생이 분명했다. 그런데 결혼하지 2년이 지나서 제 3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바로 아빠로서의 인생이다. 결혼으로 시작된 제 2의 인생이 그냥 커피라면 아이가 태어나서 시작된 제 3의 인생은 분명 TOP와 같았다. 그만큼 엄청 진한 경험이었고, 지금도 그 경험은 진행 중이다. 산부인과에서 의사 선생님이 아내에게 자연분만이 어려울 것 같다고 이야기해 오던 터라 우리는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새벽.

"오빠 병원 가봐야 될 거 같애..."

방으로 들어오며 소리 치듯 던진 아내의 한마디에 내 몸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내는 출산을 한 달 앞둔 이 새벽에 하혈을 하고 있었다. 머리속에 생각이 많아진다. 정기 검진을 다니며 산부인과 원장님께 들었던 걱정어린 말들, 인터넷에서 접했던 별의 별 이야기들이 빠르게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다 방바닥에 떨어진 새빨간 핏자국들을 보며 정신을 다 잡았다. 황급히 도착한 산부인과는 어두웠고 내 마음도 그랬다. 어렵사리 찾아 아내가 급하게 들어간 검사실문을 바라보며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르겠다. 한 30-40분 정도가 지났을까? 당직을 서고 계시던 원장님이 나오셔서 보호자를 찾으신다. 보호자임을 밝힌 뒤 원장님의 한마디 말이 떨어지기 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아마도 비슷한 경험을 해보신분들은 이해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미 진통이 시작됐고 지금 약으로도 멈출 수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예정보다는 이르지만 오늘 수술(제왕절개)을 해서 출산을 하자는 이야기 였다. 한 달 이른 출산이 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별다른 수가 없어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하며 입원수속을 진행했다. 아침이 되자 아내를 담당하던 원장님이 출근하셨고 아내는 그렇게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 시작된 기다림.

'아이는 건강할까?' '아내는 이상 없을까?' 부디 모두 건강하게 나와주기를.. 이 생각만 되풀이하며 시계만 보는데 보고 또 봐도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수술실 근처를 서성이다, 임시로 마련된 입원실에서 들어가서 대기하다 또 다시 나와서 수술실 근처를 왔다 갔다하기를 반복 하던 중에 "OOO 보호자님~" 이라는 소리가 나를 돌아보게 했고, 그렇게 다지(아이 태명)와 처음 인사하게 되었다. 간호사가 축하한다고 왕자님이라며 왠 조그마한 핏덩이같은 아이를 보여주는데 기뻐할 틈도 없이 일찍 태어나서 호흡이 불안정하다고 금방 데리고 가버렸다. 걱정이 됐지만 마음속에는 아내는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컷다. 이 후에 간호사에게 산모가 괜찮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수술을 마치고 입원실로 올라온 (아직 마취에서 덜 깨어나 비몽사몽한) 아내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나서야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튿날 걱정과 달리 다지도 정상 호흡으로 회복되었고 퇴원 진료에서는 36주만에 태어난 아이 치고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다행이라는 의사의 긍정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이 육아 서막의 시작이었다.

아내도 그랬고, 나 또한 부모가 처음이라 두려움도 컸고, 걱정이 많았다. 우리가 과연 이 어린 생명을 잘 키울 수 있을까 매일 생각했다. 육아 참고 서적도 닥치는 대로 많이 읽었다. 그 중 <베이비 위스퍼>란 책은 육아 철학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책에서 본 다른 내용보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그 아이가 아무것도 모를거라 생각하지 말고, 인격체로 대우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말도 못하고 아무 것도 못한다고 해서, 기저귀를 갈기 위해 예고도 없이 바지를 갑자기 확 벗기는 행위 등은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조리원에서 집으로 처음 갔을때, 아이에게 집을 소개해 주라는 조언 등을 통해 아이를 인격체로 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육아 철학은 육아 철학대로 동작했지만, 걱정회로는 걱정회로 대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사소한 일로 오만 걱정을 하곤 했었다. 아이가 잘 때 숨을 쉬고 있나 코 밑에 손가락을 무수히 들이대 보았고, 울기 시작하면 또 어딘가 아픈 것은 아닐지 사서 걱정을 했다. 아이는 배가 고프거나, 응가를 했을 뿐인데 말이다.

아이는 걱정과 달리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많은 부모들이 바라는 것 중 하나는 또래의 아이들과 큰 차이 없이 자신의 아이가 성장하는 것이리라. 아이가 36주만에 작게 태어나서 그런지, 정기 검진 시마다 몸무게/키 등 발육상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100% 중 몸무게는 60%고요, 키는 70%에요." 50%가 평균이니 그보다 넘어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다른 아이들 뒤집을 시기에 아이도 뒤집었고, 아빠/엄마를 말하는 것도 시기에 맞춰서 모자람 없이 잘 해 주었다.

하지만 육아는 현실이었다.

아무리 기쁘고 행복한 사진과 글로 포장하려 해도 육아는 그것 만이 아니라는걸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밤에 편히 잘 수 없다는건 곤욕이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는 것도 결코 유쾌할 수 없다. 급하게 밥을 먹어 수 차례 소화불량을 경험하게 되고, 하고싶은 일을 당연스레 접어둬야 한다. 그래서 육아는 현실이다. 아이가 있음으로 인해 생기는 흐뭇함과 기쁨, 따스한 마음은 그것대로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리고 육아 중에 포기하며 아이에게 쏟아야 하는 시간은 또 그것대로 우리를 힘들고 지치게 한다. 이 두 가지 감정과 상황이 공존하는 것이 육아 인것 같다. 이제 아이는 25개월 차에 접어 들었다. 며칠 전에는 아내가 아이에게 먹을거를 주었는데, 아이가 대뜸 "엄마, 고마워~"라는 말을 했다. 그 순간 아내와 나는 녹아내렸다. 한번도 가르친적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말인데 불쑥 너무 이쁘게 말해서 가슴이 녹아내렸다. 이제는 할 수 있는 말이 너무 많아졌고, 상황에 대한 인지 능력도 부쩍 생겼다. 함께 뽀로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데, 뽀로로가 바다에 수영하러 뛰어든 것을 보고, 아이가 "바다에 쏙~~" 이라고 말했다. 바다라는 단어를 아는지도 몰랐는데, 상황을 보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에서 행동이나 말도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는 우리의 맘대로 자라주진 않을 것이다. 또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이 들 때마다 이상하게 부모님이 생각이 난다. 어릴적 속을 썩일 때마다 어떻게 나를 포용하셨을까? 왜 무뚝뚝한 나를 위해 항상 그 희생과 헌신을 베푸셨을까?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을 읽으며 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자식은 부모가 되며 부모를 이해하는가 보다. 매일 매일이 아빠로서는 처음이다. 오늘은 778일로 처음이고, 내일은 779일로 처음일 것이다. 미리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하는 일마다 서툴고 어색하다. 하지만 육아에 답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답이 있는 인생은 없다. 그저 묵묵히 걸어나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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