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E와 나는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작년에 E는 요트를 몰고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시각화했다. 시각화된 것이 현실이 되어 펼쳐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손을 마주 잡고 깔깔 웃었다. 초대받아서 간 그녀의 집 창가에는 A4지에 색연필로 그린 요트 그림이 하나 있었다.
작년에 우린 빛 한 줌 없는 암흑 속에서 포커스 하는 것을 연습했다. 그 때 그녀와 나는 전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과거를 파괴하고, 자신만을 정복하는 시바가 되기로 했다. 돋보기로 햇빛을 한 점에 모으듯, 끊임없이 떠오르고 부서지는 판단을 과감하게 지우고 그림 한 장에 집중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갈 거야. 나와 너의 데미안처럼. 촛불을 보지 마. 검고 검은 심지를 봐. 우리는 집중이 흐트러질 때마다 서로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했다.
요트가 누구의 소유인 지는 중요하지 않다. 요트를 빌려준 E의 친구는 부는 소유가 아니라 경험을 나누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것을 소유했다며 자신을 부자라고 칭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믿지 않기로 했다.
E는 퇴사한 지 일 년이 넘었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두 눈에서 빛이 난다. 그녀가 스무 살 때 얼마나 예뻤는지 나는 보았다. 그런데 지금의 그녀는 그 때 보다 더 눈부시다. 여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빛나야 한다.
수영만 요트 경기장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정박된 배들은 처음에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시작한 꿈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꿈이 도착한 곳에서 나는 꿈으로 다시 출발한다. 출발하는 사람은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혜의 구슬을 꿰어낸다. 시바의 목걸이가 된다.
마린룩을 연출하려고 얇은 하늘색 셔츠를 입었지만 바다로 나아가자 추워지기 시작했다. 덜덜 떨면서 청자켓을 껴입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배의 제일 앞쪽에 앉아서 커튼처럼 낮게 드리워진 구름을 음미했다. 푹신한 솜사탕 구름 밑에서 물결이 반사하는 푸른빛과 구름에서 떨어진 핑크빛이 춤춘다. 빛이 춤추는 걸까, 아니면 춤이 빛나는 걸까.
생각의 단편들
어떤 혹등고래 위에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꽃이 기다린다
파란 우연
산책자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준 것
도착을 더듬으며
춤추는 생각들
종이 눈꽃을 노리는 시간
출발하기 위해 도착한다
비 맞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