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어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물론 나의 몸은 푹신한 침대에 파묻혀 있다. 스티밋에 클로버찾기 퀴즈를 포스팅하고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과하게 뿌린 토마토를 먹은 후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버렸던 것이다. 왼쪽 겨드랑이에 코를 박은 다이아나의 뜨끈한 온기가 느껴지고 누룽지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꿈에서도 미세먼지가 심했다. 처음에 나는 꿈속에서 내 손과 다이아나의 리드줄을 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구 해운대역 근처다. 이상한 일이다. 산책 코스는 늘 나루공원인데 그쪽으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황사가 점점 밀려와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제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잡고 있던 줄이 길게 늘어나더니 다이아나가 보이지 않고 줄만 보였다. 사방이 온통 노란 먼지였다. 당황해서 줄을 열심히 당겼다. 한참 동안 당겼더니 겨우 다이아나가 나타났다. 다이아나를 품에 안고 걷기 시작했다. 꿈인데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걷기 시작하면서 뿌옇던 시야가 점점 맑아지기 시작했다. 꿈 속의 길은 늘 끊져겨 있다. 끊겨있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 이동 수단은 말이기 때문이다. 장소를 말하면 그곳에 내 의식이 있게 된다.
침실로 돌아왔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나는 루시드 드림을 조심스럽게 유지하면서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예상대로 거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루시드 드림 중에 거울 앞에 선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나는 거울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거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진짜 정체를 보여줘.
어쩌자고 그런 황당한 요구를 거울에게 했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 알 수 없다. 거울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거울 속에서 흐릿한 실루엣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울이 비쳐준 것은 사람들이었다. 투명한 배경 위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포토샵의 레이어처럼 겹쳐져 있었다. 마치 냉동된 상태처럼 움직임이 없다. 조금 섬뜩했다. 젊은 남자도 있고 젊은 여자도 있었다. 늙은 여자도 있고 늙은 남자도 있었다. 나는 그들이었다.
거울 속 남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었다. 집중하면 할수록 영상은 흐려졌다. 그러나 그 광경은 몇 년 전 꿈에 나타난 어떤 목소리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대학을 다닐 때, 같은 과 학생들 중 일부러 피해 다녔던 K가 있었다. 술자리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시는 바람에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챙겨줘야 했던 아이. K의 주사가 싫어서 멀리했던 기억이 있다. 오랜 세월동안 잊고 있었던 K가, 더 정확히 말하면 K의 목소리가 꿈에 나타났던 것이다. 목소리가 나에게 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너는 네가 아니야. 이 세상에 너라는 사람은 없어. 너는 네가 만났던 사람들의 총합이거든.
그 말을 듣고 새벽에 벌떡 일어났는데, 높은 톤의 목소리가 너무나 생생해서 방 안에 K가 있는지 찾아볼 정도였다.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시간은 저녁 6시였다. 침실 창으로 노을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꿈속에 나타난 사람들의 실루엣을 더듬어 보았다. 오늘 자각몽이 나에게 말해준 단서는 무엇일까? 그 사람들은 전생의 내모습일까? 물론 나는 꿈에서 내 전생의 가슴 아픈 단면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불에 덴 듯이 "내 전생이구나"라는 확실한 느낌이 왔을 뿐,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Rucid Dream
Rucid Dream - 1. 빛나면서 감추고 있는 것
Rucid Dream - 2. 올로이드는 꿈의 안내자
Rucid Dream - 3. 신들의 고향
Rucid Dream - 4. 베일은 벗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