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유럽여행은 이탈리아였다. 그때 도시마다 짧은 점을 찍고 다니는 여행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좀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그래서 그다음 여행부터는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전진하는 것보다는 한 도시를 거점으로 정한 후 양말에 구멍이 나도록 걸어 다녔다. 동시에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나는 여행 중에 또 여행을 떠나는 것을 즐긴다.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숙소가 바뀔 때마다 짐을 풀고 싸는 번거로움을 줄이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파리에 도착한 지 며칠 만에 여행을 떠났다. 천 가방 하나에 수영복만 챙기고 니스로 가는 이지젯에 몸을 실었는데, 비행기 안에서 빛나는 니스 바다를 내려다 본 순간 1박2일이란 시간을 무한대로 늘이고 싶었다.
짐을 풀고, 창 밖을 내다보면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생 폴 호텔에서 니스 해변까지 가려면 요트 정박장을 지나 영국인 산책로를 20분 정도 걸어야 했다. 부유한 영국인들이 우기를 피해 니스로 휴양을 왔다가 이 길을 조성하는데 많은 돈을 기부해서 영국인 산책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니스 바닷가는 반질반질한 자갈 해변이라 흙이 묻지 않는다. 수영하다가 물로 샤워하고 대충 닦아도 불쾌감이 없는 건 건조한 공기와 낮은 습도때문인 것 같다.
수영을 한 후 니스의 구시가지를 걸었다. 빵집에서 갓 구운 브리오슈를 사 먹고 가죽 공방의 물건을 구경하고 다리가 아프면 노천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했다.
노을로 물드는 바다를 보며 저녁식사를 하고 싶었다. 돈이 부족하기만 하던 시절이라 프라이빗 비치의 식당은 가격이 엄청나게 비쌀까봐 망설였다. 주머니에 10유로와 팁으로 줄 동전 몇 개만 있었던 우린 카드를 그을 걸 각오하고 흰 식탁보에 작은 캔들이 타오르는 식탁에 앉았다.
처음으로 맛 본 소고기 타르타르를 거의 다 남겨버렸다. 그것조차 재미있어서 우리는 웃었고 미쉘양은 자기의 봉골레 파스타를 나눠주었다. 모히토 한 잔을 마시고도 호텔에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펍에 들어갔는데, 마침 락밴드가 연주하고 있었다.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로 다시 영국인 산책로와 요트정박장을 지나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오후, 생 폴 호텔에서 공항까지 태워준 기사님이 니스에 살아서 자신이 '럭키맨'인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그 때 호텔 창에 걸어놓은 수영복이 천천히 말라가는 시간을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은발 머리카락을 곱게 빗은 그 때의 기사님처럼.
파리의 인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