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상상력이 주는 기쁨을 느낀 사람은 불행이 닥쳐올 때도 행복하다 여기고, 어려움에 빠져도 즐겁다고 여긴단다. 진정한 불행은 바로 상상력을 발휘할 줄 모르는 것이란다. [공부의 즐거움], 칼 비테
아인슈타인은 해변을 선호했다. 잡스는 빌딩숲 주변을 돌았다. 칸트는 루소의 [에밀]을 읽은 날을 빼고는 새벽 5시와 오후 3시에 정확히 대문을 나섰다. 산책은 반려견과 똑같은 이유로 인간에게 필요하다. 짖음(공격), 불안, 변비를 예방하는 동시에 창의력이 생긴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간을 정해 산책을 시작한 때는 2015년 늦가을이다. 2015년은 장기간 박스권에서 횡보하던 코스닥 시장이 활황세로 돌아서던 해였다. 제약 바이오 주식이 상승을 이끌었고 그 해 여름 메르스 사태까지 겹쳐 코스닥 지수를 788까지 끌어올렸다.
시내 대형약국에 갈 때마다 어르신들이 산더미같은 약봉지를 커다란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넣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미리 제약회사의 주식을 선점한 덕분에 매일밤 자고 일어나면 계좌의 잔고가 불어나는 것을 확인하던 시절이었다.
사람의 심리는 참 이상하게 작동된다. 수익이 나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막상 매도버튼을 누르고 수익실현을 하면 그 종목이 더 날아갈까봐 불안했고 수익실현을 하지 않으면 폭락할까봐 불안했다.
목표수익에 다다른 종목을 분할매도하면서 파리와 니스에서 머무를 방을 예약했다. 그런데 제약주 중 한 종목은 목표수익률에 한참 못미쳐서 매도버튼을 누르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코스닥시장은 가을이 되자 하락세로 돌아섰다. 파리에서 돌아와보니 팔지 않은 그 종목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포트 전체에서 비중이 컸으므로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매수이유가 없어지지 않는 한 손절을 하지 않는 원칙이 있었기때문에 추가매수를 하기 위해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그 무렵이었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갑자기 숲을 산책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세수도 하지 않고 초읍으로 갔다.
평일 새벽 6시. 나무가 가득찬 숲길을 홀로 걸었다. 해가 뜨자 나무 둥치 사이로 빛이 쏟아졌다. 걸음을 멈추고 다람쥐들이 빠른 속도로 나무 위를 휙휙휙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빨리 움직여서 시선이 그들을 끝까지 쫒아갈 수 없었지만 다람쥐들이 기분이 좋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다람쥐들은 왜 저렇게 신이 나 있을까?
그 소리는 푸른계좌에 낙담해 있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신날 수 있을까. 다람쥐도 먹이에 대한 걱정이나 천적에 대한 두려움이 틀림없이 있을텐데, 어떻게 저렇게 기쁜 아침을 맞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왜 아침마다 다람쥐처럼 신나지 않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심으로 계좌의 색깔과 두려움이나 걱정과 상관없이 신나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고 싶었다.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외부의 사건에 관계없이 신선처럼 모든 것을 비우고 초연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건 당연히 내가 신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게 위기상황이 항상 발생하듯이 다람쥐에게도 여러가지 난관과 천적이 있다. 그런데 다람쥐는 어떻게 아침에 기쁠 수 있을까.
문득 다람쥐 세계에는 '아침에는 신날것'이라는 철칙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오후에 먹이를 발견하지 못할까봐 미리 불안해할 필요없이 아침에는 마음껏 신날 수 있다.
그 날 나는 가상의 다람쥐씨가 되어 '아침에는 신날것'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면 계좌의 색깔과 상관없이 아침에는 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시장은 항상 오르거나 내리고, 폭등하거나 폭락한다. 나는 즉흥적으로 만든 다람쥐원칙때문에 시장의 상황에 상관없이 아침에는 늘 기분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더불어 산책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제와서 느끼지만 매일 기분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의식적인 노력이 루틴이 되면 그 어떤 충격적인 사건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 습관이 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가상의 다람쥐씨가 한 분 더 나온다면 내일 아침은 두 배로 신날 것 같다.
• 투자에세이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