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마콘도
습기는 그저께부터 몰려왔다. 산책하는 도중에 비가 왔는데 다시 집에 돌아가기가 어중간한 위치라 그냥 비를 맞고 산책을 했었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민락수변공원을 거쳐 집까지 걸었다. 마린시티의 야경과 함께 잔잔하지만 제법 거센 비가 바다에 떨어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머리카락이 다 젖어있었다. 샤워를 하고 명상을 한 후 땀으로 범벅이 된 몸에 또 한 번의 찬물을 끼얹고 오랜만에 개운하게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식사와 설겆이를 마친 나는 마콘도 마을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배낭도, 기차표도 필요없다. 나는 필사되고 있는 백 년동안의 고독, 363페이지로 들어갔다. 현실에서도 많은 양의 비를 맞은 데다가 마을에 도착하니 거기에도 비가 내리고 있어서 나 자신이 엄청난 수분을 흡입하는 생명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콘도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소설 속의 글자들을 내 노트로 하나씩 운반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 한페이지씩 소설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360일이상 했더니 나 자신이 마콘도 마을에 사는 원주민이 된 듯한 착각이 들고 게다가 이미 이 소설을 다 읽어버렸기때문에 이 마을에 비가 4년 11개월 이틀동안 내릴 예정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 그래서 비만 그치면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우르슬라에게 이 사실을 슬쩍 알려주고 싶기도 하다.
비는 끝없이 내렸다. 페르난다는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자 남편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그의 첩 페트라 코테스를 욕하기 시작하더니 시댁식구들에 대한 원망을 장장 5페이지에 걸쳐 털어놓는다. 그 동안 가족들의 젖은 옷에는 이끼가 돋고, 물고기들이 앞문으로 들어와 창문으로 나가고 우르슬라의 등에는 거머리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피를 빨고 있다. 그리고 다 자라면 사랑에 빠질 두 아이가 서로 이모와 조카라는 사실을 모르고 늙은 우르슬라의 머리에 붉은 헝겊을 씌우고 얼굴에 물감으로 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현실에 돌아와서도 문장이 끊어지지 않는 마르케스체로 대화를 하고 있다.
생각의 단편들
비, 데미안, K
어떤 혹등고래 위에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꽃이 기다린다
파란 우연
산책자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준 것
도착을 더듬으며
춤추는 생각들
종이 눈꽃을 노리는 시간
출발하기 위해 도착한다
비 맞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