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michellbarry
나는 봄의 식탁을 좋아했다. 산책하다가 벚꽃을 가져오면 미쉘양은 식탁에 꽃잎을 흩뿌렸다. 그냥 감자채 볶음과 순두부찌개였을 뿐인데, 옆에 있던 E가 탄성을 질렀다.
가장 더울 때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며칠동안 결단을 내리지 못해서 자꾸만 내일로 넘기던 문제가 있었다. 오늘이 계속되었기때문에 내일은 오지 않았다.
문제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알 수 없었다. 알아채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숨어 있었고, 똑바로 마주하면 너무 커져 버린 종기같이 느껴져서 차라리 저절로 익어 터져서 가장 큰 아픔을 바라는 은밀한 마음까지 품게 되었다. 나는 그 마음조차 영악하게 회피하면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읽고 있었다.
레이 달리오는 그 페이지에서 나를 잡아끌었다. 그는 나에게 개방적인 사람과 폐쇄적인 사람의 특징을 공들여 설명하고 있었는데, 나 자신이 명백하게 폐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작고 뾰쪽한 빙산 밑에 숨어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제서야 작년에는 하루 2시간 이상 몰입해서 하던 호흡훈련을 오랫동안 중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간헐적으로 했던 캔들포커스도 너무 느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공들여서 하던 필사도, 요가도, 소설 쓰기도 더위를 핑계 삼아 대충 흉내만 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 식탁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예쁘고 단정하게 차려져 있었다.
Photo by @michellbarry
나는 요리하는 것을 싫어한다. 몇 년동안 어떻게 커피를 볶았는지 모를 정도로 불을 다루는 것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미쉘양이 늘 밥을 하고 나는 설겆이를 한다.
오늘의 메뉴는 스팸김밥이었다. 미쉘양은 졸업작품때문에 빨리 학교에 가봐야 한다면서도 젖은 머리를 말릴 새도 없이 빛의 속도로 식탁을 차렸다. 그 마음으로 미쉘양의 어머니도, 외할머니도 아침식탁을 차렸을 것이다. 스팸김밥을 먹으면서 고마운 마음이 몰아쳤다. 나였다면 하루 쯤은 그냥 알아서 하라고 말했을 텐데... 몇 주 전에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하와이편을 보다가 스팸김밥을 먹어보고 싶다고 지나가다가 말했는데 그걸 기억했나 보다.
일기를 쓰는 지금에서야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바로 나에게 도착하는 선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처를 잘 한다면 더 지혜로워질 수 있을 것이고, 정말 그 안에 선물이 있다면 보물찾기하듯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