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2017) - 4편 도착하는 질문들

Words
429
Reading
2 min
9y
Listen to this post
~3 min

IMG_0721.JPG
Stumptown coffee, Apr. 2017

계속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냐, 춤을 출 것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면, 나는 네가 춤을 추었으면 좋겠어.
-Lee Ann Womack






도착하는 질문들





 스텀타운으로 가는 길은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았다. 커피가게를 할 때 단골손님이 스텀타운에서 공수해준 [헤어벤더]를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려 마셨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크림같은 목넘김에 달콤한 꽃잎 맛이 나던 커피.


 구글 지도를 보면서 잠시 검색하는 사이에 길 가던 동네 주민들이 한 블록마다 나타나 "도와줄까?"라고 물어왔다. 목소리는 명랑하고 눈빛은 사려깊었다. 집집마다 화단에 꽃과 풀들을 심어놓았다.


IMG_0729.JPG
Seattle, Apr. 2017


 게이 프렌들리한 시애틀은 무지개가 땅에도 있고 쇼윈도에도 있다.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스텀타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매장이 북적거렸다. 날씨가 추워서 따뜻한 라떼를 시키고 '노숙'을 위해 잘생긴 보온병을 구입했다. 매장의 좌석은 자리가 없어서 한쪽 바 구석에 서서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우유에 죽지 않고, 풀바디에 설탕 한 톨도 넣지 않았는데 달았다.
 빗방울이 다시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촉촉한 날씨는 누군가로 하여금 맛있는 커피를 욕망하도록 만들고, 그가 만든 커피를 마신 사람은 커피잔 속에서 신의 얼굴을 본다.


IMG_0722.JPG
Stumptown coffee, Apr. 2017



 
IMG_0723.JPG
Stumptown coffee, Apr. 2017




 순간 나는 나를 보았다. 설겆이 거리가 씽크대에 산처럼 쌓여 있고, 건너뛰었던 점심과 저녁을 허겁지겁 몰아서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나는 그 때 나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했다. 이 쳇바퀴같은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넌 반드시 빠져나올 거야.
네가 날 보고, 내가 널 보고 있어.
지금 이 순간.



IMG_0755.JPG
Melrose market, Apr. 2017

IMG_0749.JPG
Melrose market, Apr. 2017


 늦은 아침을 먹기로 한 곳은 멜로즈 마켓이었다. 레스토랑 몇 개와 문구점, 꽃집과 정육점이 모여있는 곳인데 평일이기도 하고, 아직 점심시간이 아니어서 한산했다. 여기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사진 찍을 생각을 못할 정도로 맛있었다. 시애틀에서 일 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 정도로.




 멜로즈 마켓을 나와 몇 블록 떨어진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로 이동하는 사이에 하늘이 맑아졌다.


IMG_0724.JPG
Starbucks Reserve, Apr. 2017



 매장 안에서 잠시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대형 프로밧에서 볶여진 커피가 구리빛 트랜스퍼 튜브를 통해 날아가는 소리와 커피향기에 압도되었기때문이다. 여기는 커피의 천국인가. 챠르르르. 챠르르르. 커피콩들이 춤추는 소리를 들으며 예쁨이 발사되던 커피잔을 샀다.

IMG_0725.JPG
Starbucks Reserve, Apr. 2017

IMG_0726.JPG
Starbucks Reserve, Apr. 2017





 이렇게 해서 시애틀에서의 일정은 끝냈다. 여기에서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시애틀에서 2박을 하기로 계획했는데, 사실은 1박을 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비행기 체크인을 하려고 했는데 -나는 미국여행이 처음이었고 무비자인줄 알고 있었다- 이스타비자 발급 승인이 안떨어지는 바람에 공항에서 3시간 발을 동동 구르다가 비행기표를 날렸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에 겨우 비자 승인이 떨어졌고 그 다음날 비행기표를 새로 끊었다.
 솔직하게 공중에 날려버린 비행기표값과 숙박비가 아까웠다. "스승을 만나러 가는 길은 험난하다" 라는 주문을 나 자신에게 건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것은 이틀에 걸쳐 방문해야 할 곳을 하루만에 다 해치우는 신공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을 통해 시간을 대하는 관점이 바뀌게 되었다.





여행기(2017)


1편 용기가 나를 본다
2편 스며드는 모든 것들
3편 페르시안 실링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