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이익 구조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상대를 설득할 수 없다. 이는 토큰 이코노미가 인센티브를 기준으로 움직이기 때문이고, 투자자의 입장, 저작자의 입장, 큐레이터의 입장 모두 일정 수준의 합의에 다다르기 힘들게 만든다. 정해진 파이를 두고 이를 분배해야 하는 근원적인 제약이 합의를 가로막는다.
인센티브로 분배의 논리를 다룰 수 없기 때문에 페널티 부과와 같은 처벌을 가하자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대부분의 처벌 방향은 투자자의 어뷰징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와 같은 논리는 자본주의 불평등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강남의 건물주가 금수저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달에 수억원으 수익을 올리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점하나 찍고 보상을 가져가는 사람은 소통을 하지 않는다. 건물주의 입장이 신문에 대서특필 되는 일은 없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증인에 대한 논란 또한 이와 비슷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증인은 현재 컴퓨팅 자원을 제공해 기여를 하고 있는데, 권력의 사유화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오래되지 않은 경험에 서 나온다. 사회의 플랫폼을 지배 하는 대기업과 포털의 책임을 묻는 현재의 사회적인 움직임과 닿아 있다.
민주주의는 항상 시끄럽다. 다양한 이익 집단의 목소리가 있고, 그 안에서 조화될 수 있는 평형점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익 구조의 완벽한 평형은 없고 계속 움직인다. 이와 같은 논쟁이 계속 되고 이슈화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더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본다. 물론 누군가가 힘으로 독재로 나아간다면 자정 작용이 일어나기 전에 가라앉을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