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순 교수님의 ‘용서에 대하여’는 책장 속에 가장 먼지가 쌓여있던 책이였다. 교수님의 책은 신간 몇권을 제외하곤 전부 읽고 또 읽었지만, 용서에 대하여 만큼은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사실, 난 두려운 거였다. 내가 여태껏 느꼈던 분노 또는 내가 누군가에게 저질렀던 잘못 등을 윤리적, 철학적으로 접근해 융해해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의 존재란 내게 의미가 남다르다. 이 세계에서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은 오로지 말하기하고 쓰기란 것을 알려주신, 말하기와 쓰기를 통해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어떻게 내 사유를 타자에게 전달할 것인가’ 를 실험해야 함을 가르쳐 주신 내겐 은인 같은 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용서’에 대한 의미는 어떻게 세울 것이며 무엇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또는 용서는 어떻게 성립되는가 등 다양한 고찰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내 안에 쌓인 지난 시간만큼의 분해되지 못한 묵은 감정들은 정리를 해야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용기가 부족한 나는 더더욱 책을 펼칠 수 없었다. 살면서 잘못 한번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용서를 하지 못해본 사람 또한 어디 있는가. 혹시, 내가 여태껏 해온 용서란 진정한 용서가 아닌건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용서'란 단순히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결코 가볍게 행할 문제가 아니기에 이 개념을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올해 나는 정말 없는 용기 다 짜내어 초라한 내 자신을 마주하기로 스스로 약속했고, 더이상은(벌써 2월 중반이라니) 미룰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위로해주듯 교수님의 글은 나를 천천히 융해하기 시작했다.
용서란
국적,종교,문화,성별,나이,학력,직업 등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그 잘못에 대해 용서받기를 원할 것이다. 결국 인간이란 누구나 용서받고 용서하는 것에 대하여 씨름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책에선 말하고 있다. 종종 이야기하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라는 구절엔 이러한 용서의 '필요성'과 '타당성'이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설정된 장치에 따라 항상 동일하게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듯이, 용서에 대한 성찰에는 늘 인간에 대한 복합적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늘 경계하는 한 인간에 대한 전적인 미화나 이상화, 반대로 전적인 악마화는 이런 맥락에서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용서는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간 삶의 거의 모든 영역과 연계되는 이 용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무조건적으로 해야하는 것만이 용서인지, 안하고 살면 안되는지 등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연구한 바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용서란 무엇인가:용서의 두 모델’ 에서는 ‘단념 모델’과 ‘덕목 모델’ 을 이야기 하는데, 각자 모델이 가진 한계와 수용성을 풀이하며 버틀러의 이론을 설명한다. 인상 깊었던 구절로는, 인간이 느끼는 분노의 감정이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단념 모델의 한계를 넘어서는 용서의 또 다른 다른 모델인 ‘덕목 모델’에 있다.
타인을 용서하고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인류의 보편적 선의지와 분노는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면서도 여전히 그 잘못에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분노가 타인을 향한 인간의 자비심을 파괴하는 ‘파괴적 분노’일 때, ‘도덕적 의무로서의 용서’와 양립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모든 분노를 단념할 필요가 없다는 버틀러의 주장은 중요하다. -p.42
책은 용서에서 판단해야 할 다섯가지, 즉 용서의 적절한 대상, 정도, 시기, 동기, 방식등을 야기하며 용서란 개념을 구체화 하여 우리 삶에 어떻게 하면 스며들게 할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어떤 잘못에 분개해 왔으며 아직도 부당한 건에 대하여 어떻게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용서 받지 못한 때 등 나의 삶에 적용시켜 성찰 할 수 있었다.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가. 왜 용서해야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복수가 아닌 용서에 대해 고민하고 씨름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대화인 책. 누구에게든 추천할 수 있는, 성장을 도와주는 그런 책이다.
만약 용서할 만한 것만 용서하겠다고 한다면, 용서라는 바로 그 개념 자체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 자크 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