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라나입니다.
오늘은 문득 결혼식에 대한 추억이 떠올라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이야기에 앞서 먼저보여드리는 부모님 결혼식 그림입니다 :)
저는 한국에서 결혼식, 미국에서 리셉션(피로연)을 했습니다.
미국에서의 리셉션은 제가 남편의 친척들을 본적이 없어서 시어머니께서 가족분들을 소개시키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저의 부부를 위해 준비하신 가족 파티였습니다.
한국에서의 결혼준비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바빴다.
결혼식 문제와 더불어 약혼비자를 위한 인터뷰 준비와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일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만큼 정신이 없었다.
처음 결혼식 계획은 양가 어른들만 모시고 조촐한 결혼식을 진행하려 했지만, 부모님께는 첫 자녀의 결혼식인데다 멀리 시집보내는 딸인데 많은 분들께 인사드리는게 맞는 듯 하여 남들이 하는 평범한 결혼식을 올렸다.
미국에선 시부모님만 결혼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다.
결혼식 전 엄마는 시어머니를 위한 선물로 한복을 맞추셨다.
사실 외국인에게 한복차림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시어머니께선 흔쾌히 한복차림을 해주셨다. 정말 감사하다.
한국의 결혼식이 시부모님껜 다소 낮선 풍경이셨을 것이다.
30분만에 서두르듯 끝나는 결혼식에 홀이 여러개인 결혼식장, 그리고 로비엔 각각의 결혼식을 보기위해 엉킨듯 걸어다니는 하객들...외국인에게 보여지는 한국의 결혼식은 어떠했을까??
다행인지 내 결혼식 뒤엔 예약커플이 없어 느긋하게 할 수 있었다.
내 결혼식은 나만을 위한것과 더불어 하객들을 위한 결혼식이었다.
난 두번째 만남이었던 시부모님 앞에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춤을 추는 담대함을 보였다.
저때 한창 유행이던 오렌지 캬라멜의 까탈레나를 노래에 맞춰 춤을 췄는데 처음엔 친구들끼리 결혼 전 우스겟소리로 말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웨딩드레스가 찢어질까봐 최소한의 동작으로 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나의 모습에 많이 놀라신듯 보였다.
나는 그분들에게 나의 결혼식 날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뒤이은 동생 친구들의 축가.
이제 왜 나의 결혼식이 철저히 하객들을 위한 결혼식인지 알것이다.
내 결혼식은 너도 나도 모두 춤바람이 되버린 무대와 같았다.
이 친구들 덕분에 난 내남편의 춤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뒤이은 동생이 비밀리에 준비한 축가.
이때부터 눈물바다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기승전 남편의 만세삼창으로 끝나는 결혼식이다.
이렇게 우리둘은 서로 부부로서의 첫 시작을 맞이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4일 후 나는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몸을 실었다.
더 오래있고 싶었지만 비자문제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내 식구들의 칭호가 '친정'이라는 단어로 변하게 된건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막 도착한 우리들은 한국에서 온 내 짐정리와 함께 새로운 나날들을 맞이했다.
귀국 후 100일안에 미국에서의 혼인신고, 영주권 신청을 해야 하는지라 서류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판사 앞에서 결혼을 서약하고 미국에서 정식 부부가 되었다.
판사 앞에서 하는 서약은 최소 3명의 증인이 필요한데,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꽃다발과 함께 와주셔서 축하해 주셨다.
정신없는 하루들이 흐르고 조금씩 여유로워질때쯤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소식이 우릴 맞이했다. 바로 임신!!!
사실 신혼생활과 미국생활에 어느정도 적응이 끝나면 아이를 가지려고 했는데 덜컥 하늘은 우리에게 축복을 선물해주셨다.
임신 12주쯤 시어머니의 권유로 치뤄진 리셉션.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시부모님께 정말 감사했다.
아직 영어도 미숙하고 붙임성 없는 내 성격에 리셉션은 처음엔 부담이었지만 언제 내 사랑하는 남편의 가족들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을 다잡았다.
리셉션은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의 홀을 빌려 진행했는데 정말 음식도 맛있고 내부 인테리어도 독특했다.
시어머니께서 준비하신 한복 전시와 한국에서 치뤄진 결혼 사진들.
친척분들이 오시며 정말 곱고 예쁘다며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가족단위끼리 테이블을 잡고 착석하면 우리 부부는 각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나눈다.
아마 한국의 결혼식에서 식사할때의 풍경과 많이 비슷할 듯 하다.
어느정도 인사를 나눈 뒤 치뤄진 케잌 컷팅식.
컵케잌으로 맞춘건 참석해 주신 분들이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날 남편의 친척분들이 하신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OO이 저렇게 활짝 웃는거 오늘 처음봐"
그렇다. 우리 남편은 가족에게도 친척들에게도 웃음에 무색한 사람이었다.
내 결혼식을 돌아보며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의 결혼식의 그때가 궁금해졌다.
그분들도 젊을적 이런 설렌 결혼식과 함께 부부생활을 했고 바쁘게 살아오셨을텐데 지금은 손자까지 얻으신 나이가 되셨다.
나의 결혼식을 생각해보니 그분들의 젊을적 활기 넘치던 모습들이 미묘하게 스친다.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아버지께 미리 죄송;; 정말 잘생기셨는데 제 손이 잘못했네요ㅜ)
두분의 자유분방했던 결혼 사진을 보며 느껴진 그때의 에너지가 지금은 우리를 감싸는 포근함으로 다가온다.
부모님의 결혼사진 속 모습은 지금의 내 모습보다 젊고 앳되다.
부모님도 나처럼 철부지스러운 젊은 부부셨을텐데 이렇게 첫 자식이 성장하고 시집가는 순간을 상상이나 하셨을까.
내 결혼식의 추억이 양가 부모님의 사랑과 고마움으로 다가오는 오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