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묘한 경험을 했다. 이야기의 논리 전개나 근거는 아주 이상했는데, 기가 차게 공감이 가는 결론에 이르는 발표를 들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꽤 유명한 사람들의 글도 그럴 때가 많다.
오늘 본 책도 좀 그랬다. 책을 읽다 보면 그냥 넘어가기에는 조금 뭣한, 자잘한 실수들을 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갑골문의 원형을 보면 손에 붓을 쥐고 먹물을 묻히는 생동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탕누어,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글쎄, 아무리 상상을 해도 그랬을 것 같지 않다. 갑골문 시대(대략 기원전 14세기에서 12세기 정도까지)에도 과연 '먹물과 붓'을 사용했을까? 그 당시를 한참 지났을 때도 가장 소프트한 글쓰기 재료가 '대나무' 정도가 아니었던가(죽간). 거기에 먹을 갈아서 붓으로 글을 썼다고? 참고로 종이는 2세기쯤 되어야 '공식적'으로 발명된다. 붓으로 글을 쓰는 모습이 일반화되려면 그로부터 또 한참 시간이 흘러야 했을 것이다.
또 이런 게 있었다.
"궁전만 보면 가로세로 1500미터 정도 됩니다.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의 면적이 7만8천평인데, 그에 비하면 정말 작죠."(양정모, 난처한 미술이야기2)
우선 하나는 미터 단위로 표시하고, 다른 하나는 평으로 표시한 불친절함에 눈이 찌푸려졌다. 편집자도 잡지 않았다. '사회평론'이라는 출판사에 대한 믿음도 조금 깎인다.
게다가 가로 세로 1500미터라면 각각 1500미터라는 소린지 가로 세로 더해서 1500미터라는 소린지 알 수가 없다. 대개는 가로세로 각각 1500미터라고 읽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읽으면 그 평수가 어마어마하다. 68만평쯤 된다.
가로 세로 합쳐서 1500미터라면 50만제곱미터쯤이 되고 15만1250평쯤이다. 그래도 카르나크 신전보다 두 배쯤 크다. "정말 작죠"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자료를 뒤져보았더니, (아마도) 이 50만제콥미터는 크노소스 궁전 주변의 주거지 전체를 포함한 면적인 것 같고, 크노소스 궁전만으로는 14000제곱미터(4,235평)쯤이다. 그러면 카르낙 신전에 비해 크노소스 궁전의 크기는 20배쯤 작다. 그런데 카르낙신정도 60에이크라고 쓰여진 것을 확인하고 평수로 계산해 보니 75000평쯤이다. 그래 좋다. 그런 정도 차이는 그럴 수 있다고 하자.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을 테니.
이런 자잘한 실수들이 눈에 띄는 책을 읽다 보면 조금씩 믿음이 줄어든다. 사실 무엇인가를 제대로 안다고 할 때 그것은 사소한 것들까지 '잘 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 ͡° ͜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