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내용은 앞의 에세이에서 이어집니다.
진로 특강 간담회 시간이 되었다. 본관과 도서관 사이 공간을 조금 서성이다가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강사들은 대부분 이미 와서 간담회 장소에 앉아 있었다. 강사들은 졸업생들이 대다수였다. 진로 업무 담당자이신 윤리 선생님과 내가 재학하던 시절에 다른 반 영어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이 교감선생님이 되어 나타나셨다. 우리는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약 스무 명의 강사 중에 서너 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를 소개할 때 몇 회 졸업생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은 걸 보고 내가 이곳을 벗어난 이후 맹렬히 나이 먹어 왔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스무 명의 강사들은 각기 다른 스무 개의 직업군에 종사하고 있었다. 의료계, 법조계, 교육계, 기업, 과학 분야, 공업, IT기술 분야 등 참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학생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특강 분야를 써내고 지정된 교실로 이동하여 각 직업군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윤리 선생님은 내 소개가 끝나자, “요즘 초등학교 선생님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이번에 강의를 신설했습니다.”라고 덧붙이셨다.
강사 중 눈에 띄는 졸업생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전년도에 졸업해서 이제 갓 스물이었다. 성적이 최 상위권이었던 그녀는 자기 소신껏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교 졸업생 특채로 공기업에 입사했단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다른 인생의 결단을 보여주었지만, 자기를 소개할 땐 수줍음 많은 여고생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소개가 끝나고, 윤리 선생님이 그녀의 우수함과 굳은 신념에 대해 간략히 덧붙이셨다. 그때도 그녀는 수줍게 웃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녀는 여학생이 입학한 이후 첫 졸업생이었다. 사회에 진출한 내 첫 후배이기도 했다. 그녀의 소신이 그녀를 슬프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길 바랐다.
이 사회는 왜곡된 부끄러움을 가르쳐 왔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엔 떳떳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일엔 부끄러워하도록 언론과 가진 자들은, 그렇게 사람들을 속여 왔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부끄러워 한 나머지, 진짜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고등학교 교무 선생님인 아버지가 시험 문제를 유출하여 학생인 자녀에게 주었다는 뉴스를 듣는 세상이다. 진짜 부끄러움이 뭔지 가르쳐야 할 부모이자 선생이, 사회의 왜곡된 부끄러움의 메시지에 속고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잘못된 부끄러움에 속지 않고 소신 있게 취업을 택한 그 후배가 후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가 가진 간판으로 그녀를 평가하지 않고 그녀가 가진 소신과 가치로 그녀를 바라봐주길 바랐다.
인사와 소개가 마친 후, 우린 학교가 주는 명예 교사 위촉장을 받았다. 졸업한지 20년이 지나서, 모교에 명예 교사로 와서 내가 하는 일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꽤나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졸업생들은 나처럼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교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저마다 자신이 학교 곳곳을 누비던 그 시절의 자기 모습을 떠올려 보았을 것이다. 그 시절 그들이 꿈꾸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명예 교사가 되어 돌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 중 대부분이, 지금 꿈꾸는 일을 평생 하며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며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삶은 신비로운 것이다.
강의 전 간담회가 끝나고 8시가 되어 강사들은 각 강의실로 흩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야간 자율 학습의 중심부로 걸어 들어갔다. 남녀 학생들이 한 교실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특강이라고 뭔가를 가르치거나 딱딱한 정보만을 전달하고 싶진 않았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을 쪼개서 이루어지는 특강인 만큼 각 학생들은 이 시간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제각각 다양할 것이었다. 야자 시간을 성적 향상의 기회로 삼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 이상의 의미를 얻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20년 전의 나처럼 야자 시간을 다른 취미 활동의 기회로 삼고 있는 학생들에겐, 그 이상의 재미를 얻고자 했을 것이다.
시간이 아깝지 않으면서 정보도 주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시간이 되어야 했다. 난 ‘이야기’로 내가 해야 할 말들을 풀어내기로 했다. 내가 많은 특강들을 들으면서 인상 깊게 들었던 내용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다. 처음부터 보편으로 접근하면, 뻔한 정보만을 늘어놓게 된다. 난 그 즈음 다녀왔던 수학여행 얘기부터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생으로 가는 것과 교사로서 학생들을 인솔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 지부터 말이다. 그런 다음, 내가 교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나의 시행착오들, 교사가 하는 일들, 내가 교사로서 소망하는 것들을 풀어놓았다. 질의응답 시간에 학생들은 ‘직업으로서의 교사’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들을 했다. 그 덕에 현실적인 이야기도 전달할 수 있었다. 최소한 졸거나 따분해 하는 학생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때 마침 내 친구가 그 학교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담임하던 반 학생 몇이 내가 이야기를 하던 그 교실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 애들이 그 친구에게 오더니, 이렇게 말했단다.
“선생님, 저 목표 정했어요. 교대 가서 초등학교 선생님 될 거예요!”
친구는 애들이 저러는 거 보면 특강을 잘 한 모양이라고 얘기했지만, 난 조금 머쓱해졌다. 내가 진짜 현실은 덮어 두고 동화 같은 얘기들만 늘어놓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도 조금은 있다. 힘든 면을 전혀 얘기 안 한 건 아니지만, 어차피 꿈을 꾸는 아이들 앞에, 나는 이게 힘들다, 저게 어렵다, 요즘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말을 적나라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사회생활이란 것은, 무엇을 해도, 어딜 가도 그 위치와 역할에 걸맞는 보람과 어려움이 동전의 양면처럼 있게 마련이다. 지금 어려움을 떠든다고, 또 보람을 포장하여 얘기한다고 실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림자가 아무리 크게 느껴져도, 혹은 빛을 받는 면만 있는 것 같아도 그 길을 선택할 사람은 그것들에 개의치 않고 선택하기 마련이다.
일정을 다 마치고 나서 다시 불 밝힌 건물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 나왔다. 예전에 나를 반겨주던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나를 맞아주었다. 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특강을 마친 아이들은 다시 자기 교실로 돌아가서 남은 시간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자신이 꿈이라고 믿는 그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해 군불을 뗄 것이다.
난 내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저 곳에서 무엇을 했었는지, 또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 지금의 이 자리에 있기 위해 그 수많은 밤을 하얀 벽과 형광등 아래에서 보낸 건 아니었다. 그건 그저 내 앞에 주어진 일이었다. 그게 어떤 미래와 연결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시절은 그랬다. 뭘 하든, 그 시간에 대한 의미와 해석은 늘 나중 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