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모처럼 주어진 시간을 유튜브에서 노래를 검색해 듣거나 오승환의 등판 영상을 보는 일 따위로 흘려보내곤 한다. 이 시간엔 책을 보거나 글을 써야지, 하는 다짐도 우아한 궤적을 그리며 스트라이크존으로 내다꽂히는 야구공 앞에서, 인디 그룹 ‘어쿠스틱 콜라보’의 노래를 찾아 듣기 위한 검색창 앞에선 힘을 잃곤 한다. 이렇게 시간을 줄줄 새는 부대에 담아갖고 다니면서, 어떤 일을 할 땐 지독하게 생산성을 추구하는 양면성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집은 가사 분담이 비교적 확실하다.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아내가, 빨래나 화장실 청소, 분리수거 같은 일들은 내가 담당한다. 때때로 아내가 내게 설거지를 요청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난 아내에게 잠시 타임을 외치고, 설거지 임무에 투입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팟캐스트를 듣기 위해 팟캐스트 방송을 고르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장착하는 것이다.
비상에 걸린 5분 대기조처럼 준비 과정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등 뒤에서 잔소리의 총탄이 빗발친다.
“설거지를 얼마나 오래 하려고 그래?”
“그거 준비하는 사이에 설거지 반은 끝냈겠다.”
“소풍 가니?”
이렇게 설거지를 위한 수트를 장착하고 싱크대 앞에 서면 마음이 든든하다. 어떤 적도 다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 기름때든, 찌든 때든, 말라붙은 치즈든, 다 덤벼라. 몇 시간이고 나는 너희들과 싸울 수 있다.
지극히 자의적인 생산성에의 강한 의지는, 주로 단순 노동이나 책을 읽을 수 없는 환경에서 발현된다. 운전을 할 때, 설거지를 할 때, 파나 계란을 사러 마트에 갈 때 등 일상에서 ‘비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일에 잠시나마 한 발을 걸쳐두고 싶은 것이다.
나의 이런 심리는,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격언과도 통하는 것 같다. 아무리 험난한 여행지라도 곁에 푹신한 등받이 같은 누군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별로 힘들지 않는 것처럼, 비자발적인 과업을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그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팟캐스트 방송만 들을 수 있다면, 두 시간쯤 연속으로 설거지를 해도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적합한 말이 아닐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이어폰을 끼고 싱크대 앞에 설 때, 난 일을 하는 상태에서 벗어난다. 손은 접시를 닦고 있지만, 내 정신은 말들이 부유하는 다른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난 외부 사람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수많은 말들 혹은 멜로디 사이를 떠다니며, 말이 되고 음악이 된다. 읽지 못한 책 사이를 거니는 글이 되거나, 과거의 한 순간으로 건너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의 코와 입을 통과하는 공기가 되기도 한다.
나와 달리 설거지를 하거나, 산책을 할 때 그 일 자체에 집중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뇌를 쉬도록 두는 걸 즐기는 사람 말이다. 그런 분들은 ‘공(空)의 매혹’에 가까이 나아가는 상태를 경험할 테지만 난 이런 ‘정신의 진공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살면서 딱 한 번, 20대 후반에 이별을 경험했을 때 자발적으로 정신의 진공 상태 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뭐라도 손에 쥐고 움직이지 않으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 추억, 아쉬움, 후회 등의 감정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뜨개질을 했다. 목도리를 다섯 개 뜨고 나서야 난 그 질식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생산적인 일들인 글쓰기, 독서 등을 할 시간이 정작 주어지면 시간을 잘게 쪼개 부스러기로 만들어 손 가는 일에 먹이로 던져줘 버리곤 하면서, 정신적인 진공 상태를 유발하는 과업이 주어지면 생산성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순이 계속 되고 있다. 소파에 기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시간을 펑펑 쓰다가, 아내가 쇼핑을 가자고 하면 갑자기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재밌는 것은 얼마 전 부부동반 모임에서 아내가 내 절친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의 설거지 전 행태를 얘기했단다. 그러자 내 절친의 아내가 자기 남편도 똑같다며 박수를 치며 격한 공감을 했단다. 행동하는 습성이 비슷한 걸 보니, 이래서 친한 친구인가보다, 하면서 내 아내가 깔깔댄다.
난 친구가 부엌으로 입장하기 전에 잠시 타임을 외치고 설거지를 준비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 방 저 방을 분주히 오가면서 이어폰과 핸드폰을 챙기고, 빗발치는 아내의 잔소리 총탄 사이에서 멀뚱히 서서 음악이나 팟캐스트 방송을 검색하는 장면을 말이다. 내가 할 땐 엄숙한 의식 같았는데,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웃음이 난다.
난 설거지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싱크대 앞에 선다. 접시를 손에 드는 순간, 다른 세계에 접속 되었다는 신호가 반짝인다. 접시를 닦는 남자 하나가 싱크대 앞에서 느리게 움직인다. 하지만, 난 이미 거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