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essay] 이것은 수준 높은 애정 행각

kyslmate(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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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가수의 노래를 듣고 좋다 싶으면 그 가수의 노래를 다 찾아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렇게 다른 노래들을 찾아 들었을 때, 처음 들었던 노래보다 못한 노래들이 줄줄이 나와 고막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크리스마스에 받곤 하던 과자 세트가 생각난다. 커다란 상자에 인기 있는 과자 한두 개를 내세우고, 나머지 공간엔 배고픈 아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과자들로 채워 넣은 과자 세트 말이다.

 반대로, 한 곡에 이끌려 그 뮤지션의 노래를 찾아봤는데 처음 들었던 노래만큼 좋은 곡들이 계속 나온다면, 지나가다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옷의 폭탄 세일 팜플랫을 밟은 것처럼 반갑다. 머잖아 내 스마트폰은 그 뮤지션의 노래로 가득 차게 된다. 차에서건 설거지를 하면서건, 몇 달 동안이고 지겹도록 돌려 듣는다.

 동네 앞 마트를 갈 때도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 노래를 들으며 아이 먹을 요구르트를 산다. 요구르트를 사면서도 그 음악 덕분에 내 일상은 뮤직 비디오가 된다. 난 뮤직 비디오의 주인공이 되어, 뭘 입고 마실을 나서도 멋스러운 셀럽이 된다. (물론 음악에 취해서 그 순간 내가 느끼는 내 모습과, 다른 이들이 보는 내 모습 사이엔 바다만큼의 괴리가 있으리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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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엔, 평범한 내 안에 히어로 같은 대단한 존재감을 감추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래 보여도 나 이런 사람이야', 라는 자의식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운전할 때 음악을 들으면, 거대한 타임머신을 운전해서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현실을 부드럽게 만드는 환상 내지 비현실적인 도피라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런 도피라도 있어야 최소한의 감성을 유지할 수 있다. 말랑말랑한 음악을 들으면서 과거의 그녀를 떠올리기도 하고, 희열의 순간을 기억하기도 한다. 때론 아주 쓸쓸한 순간을 떠올리며 그 기억 속의 나를 보며 쓴 웃음을 짓기도 한다. 어쨌든, 난 그 쓸쓸함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으므로 안심한다.

 사실 작년부터 몇 달 전까지 내 스마트폰을 점령하여 일상의 틈을 메워주던 한 뮤지션을 소개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다. 예전에 연애를 할 때 즐거운 행동 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그녀에게 소개하고 함께 듣는 일이었다. 때론 반대로 내가 소개받아 함께 듣기도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는 것은, 취향과 감성을 공유하는 수준 높은 애정 행각이다. 나는 지금부터 이웃들과 그 애정 행각을 벌이려고 한다.

 들어가는 말만 A4 한 장 다 되어 간다. 이쯤에서 채널 돌아가도 할 말이 없다. 이제 바로 소개하겠다. 그 뮤지션은 <어쿠스틱 콜라보>라는 인디 그룹이다. 말이 그룹이지, 노래하는 안다은, 기타 치는 우디킴, 이렇게 두 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많은 뮤지션 팀이 그렇듯, 이 팀 역시도 보컬을 담당하는 여성의 존재감이 절대적이다. 기타 치는 뮤지션들 이름이 샘킴, 에디킴, 우디킴. 유난히 무슨 킴이 많은 건 유행인지, 우연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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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곡이 한 다스쯤 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곡을 먼저 소개하겠다. 난 설탕이 듬뿍 들어간 커피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멜로디라인이 돋보이는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다. 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는 ‘라떼’라는 말이 붙은 게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목이 타서 죽을 것 같을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광인 와이프의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다. 목이 타지 않을 땐 절대 마시지 않는다. 내 귀도 그것과 비슷하다. 설탕 듬뿍 넣은 발라드 감성에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재즈풍의 음악은 곧잘 듣는 편이다. 재즈는 엉기고 엇나가는 멜로디라인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아직 첫 곡을 소개하지 않았다. 주저리주저리 서설이 길다. 채널 돌아가도 할 말이 없다. 바로 소개하겠다. 첫 곡은 <너와 함께 한 두 번째 크리스마스>다. 가사와 멜로디 모두가, 크리스마스에 기대하는 로맨스 그 자체다. 서정적으로 시작해서 애절함으로 점점 고조되어 가는데, 그 애절함이 질척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담백하고 상큼하기까지 하다. 이 곡은 보컬 안다은이 ‘네이브로’라는 남성 보컬 그룹과 함께 부른 곡이다. 뮤직 비디오를 링크하지만, 영상을 안 보고 듣는 편이 훨씬 더 큰 감성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남녀의 화음이 어우러지는 후렴구쯤 가면 내 가슴도 폭발할 거 같다. 한 여름에도 털모자, 털옷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가 크리스마스를 느끼고 싶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곡은 2015년에 나온 앨범에 실린 <그리운 이름>이라는 곡이다. 경쾌한 멜로디로 시작하지만, 이내 보컬의 애절함이 그 경쾌함을 짓누르며 쌉싸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So far away, 너 떠나간 후에.” 라는 가사가 나올 땐 내 심장도 내 가슴에서 So far away~ 되어 멀리 떠나가 버린다.



 이 노래를 들으면, 떠나간 이름들이 하나하나 생각난다. 너 떠나간 후에, 난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역시나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하는 일은, 애정행각이다. 이웃들이 이 노래들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들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일 좋아하는 두 곡을 소개했지만, 꽤 많이 알려진 노래들은 따로 있다. 정유미 주연의 드라마 <연애의 발견> OST로 부른 ‘너무 보고 싶어’, ‘묘해, 너와’, 유이 주연의 드라마 <상류 사회> OST인 ‘그러지 마요’ 같은 곡들이다. 이 노래들도 보컬 특유의 질척이지 않는 애절함이 잘 묻어난다. 자기는 한껏 애절한데, 듣는 이는 담담하게 느껴지는 그런 색의 톤 말이다.

 인지도에서 떨어질지 몰라도, 난 앞에 소개한 두 곡이 훨씬 더 좋다. 숨겨진 명곡이라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 이름난 명인보다, 숨겨진 실력자에 더 끌리는 내 기호 때문은 아니다. 그 노래들이 멜로디로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에 그토록 좋은 것이다.


P.S.

 이웃들이 이 노래들을 듣고 어떤 느낌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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