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하루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kyslmate(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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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 한 남자가 책 한권을 들고 카페로 들어선다. 그는 불면증이 있다. 매일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 두 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에서 깬다. 남자는 아내를 잃고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가고 있다. 그의 유일한 삶의 목표는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100권을 읽는 것이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의 하루는 시작된다.

 얼마 전부터 남자는 카페에서 한 소녀를 매일 만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소녀를 보면서 인사말을 나누게 되었다. 소녀는 남자가 읽는 책에 대해 묻기도 한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도 소녀는 발랄하다. 소녀는 카페에서 자신을 관리하는 조직의 연락을 기다린다. 연락을 받고 소녀는 카페 앞에서 고급 자동차에 오른다. 남자에게 몸을 팔기 위해서이다.

 어느 날, 소녀는 관리 조직의 누군가로부터 심하게 폭행을 당한다. 낮에는 평범한 마트 직원, 밤에는 책을 읽던 남자는 소녀를 보고 분개한다. 소녀의 억울함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 남자는 소녀를 포주 조직으로부터 빼내기로 결심한다. 소녀를 빼내는데 필요한 돈을 들고 조직을 찾아간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남자를 비웃는다. 남자는 플랜 B를 가동한다. 직접 그들의 죄를 묻고 심판한다. 이 일은 상급 조직에까지 알려지고, 상급 조직은 남자를 죽이기 위해 일급 킬러를 고용한다. 남자는 이제 직접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나선다.

 2015년에 나온 영화 〈더 이퀄라이저〉의 줄거리다. 줄거리만 보면 미국판 〈아저씨〉라 부른다 해도 별 무리가 없다. 전직이 무엇인지 베일에 싸인 남자가 한 소녀를 알게 되는데, 소녀는 악당으로부터 악한 일을 당한다. 남자는 결국 조용한 생활을 접고, 그 악당을 쓸어버리려고 한다. 이야기 구조만 보면 똑같다. 같은 플랫폼인데 상체만 다른 걸 얹은 기아 세피아와 현대 아반떼처럼, 주인공의 설정에 따라 같은 구조지만 다르게 보이는 이야기들이 숱하다.

그의 소망

 상부 구조만 바꾼, 같은 플랫폼을 쓰는 이야기 중 하나인데, 내가 이 영화를 다른 영화보다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의 인물 설정에 있다. 남자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도 없이 매우 고독하게 살아간다. 그 고독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낮에 근무하는 마트에선 경비원이 되고 싶은 동료를 아끼고 지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음에 동정과 자비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뭔가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는, 이런 그에게 책 100권을 읽는 목표를 부여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남자는 꼬박꼬박 카페에 책을 가져가서 꾸역꾸역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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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반부터 격렬한 액션 씬이 나오고, 주인공이 비범한 능력으로 악당들을 때려잡는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에 책 한 권을 들고 카페로 들어서는 그 장면에서 난 이미 영화에 대한 계산을 끝냈다. 그 장면 하나로, 난 그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 목록에 포함시켰다. 엄청난 전직을 갖고 있는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인데, 그런 그의 삶의 목표가 책 100권을 읽는 것이라니! 등장인물을 이렇게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주인공이 악당에게 절대 죽을 수 없는 캐릭터라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나 역시 초야에 묻혀서 책이나 보고, 글이나 쓰면 좋겠다. 잠을 못 이룰 때면 벌떡 일어나 책 한 권을 들고 카페 문을 열면 좋겠다. 근처 테이블에 앉은 소녀와 아는 체도 하고, 농담도 나누면 좋겠다. 뭐 그런 바람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난 불면증이 걸려도 아이를 토닥이며 재워야 하므로, 방을 나서지 못한다. 그래서 로버트 맥콜(덴젤 워싱턴)이 책 한 권 들고 새벽에 카페에 들어서는 장면을 보면서 묘한 희열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단한 인물이, 일상에서 소박한 취미를 즐기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왠지 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다. 일생을 전투적으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조용히 책을 읽고 동네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역시 그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히틀러처럼 무자비하고 악랄한 삶 뒤편에 미를 추구하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인물을 보면, 아 이런 게 사람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여러 영화에서 사람 목숨을 함부로 다루는 조폭 두목이 자기 사무실 테이블 위에 있는 난이나 화초를 애지중지 키우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가진 악의와 천진난만함의 갭이 이 정도나 클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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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커리어나 하는 일과 무관하게, 아끼고 가꾸는 일, 시간, 취미 등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위로와 행복감을 얻는다.

내 하루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

 하루를 알차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일을 많이 처리한 것에 가장 높은 기준을 두고, 어떤 이는 많은 사람을 도왔다는데 그 기준을 두기도 한다.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가르쳤다거나 내 업무를 훌륭하게 처리했다면, 음 알차게 하루를 보냈군,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최고 높은 수준의 기준은 아니다. 송구하지만.

 나에게 있어 알찬 하루란, 책을 얼마나 읽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 생각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글쓰기로 표출하려고 했는지에 있다. 웃기는 일이다. 내 직업은 교사이고, 난 글로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난 오래 전부터 작가들이 자신의 하루를 평가할 법한 기준으로 내 삶을 평가하며 지내고 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내 사정이 이러하니, 난 삶에서 자신의 하는 일 외에 소중한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호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더 이퀄라이저>의 로버트 맥콜도,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100권 중 한 권을 들고 카페 문을 열 때, 가끔씩은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전직은 엄청난 정부 요인이고 평생을 전쟁터 같은 긴장 속에서 지내다가, 책과 함께 새벽의 고요를 맞을 때, 여기 지금 어디? 나 지금 뭐하지? 라고 되뇌었을지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하며 책을 펼쳐들고 이내 책 속 이야기에 빠져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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