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밤에 자는 올빼미 (Fin.)

kyslmate(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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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여기서만 맛볼 수 있지.” 솔티는 오니에게 달콤한 블루베리 열매를 주었어요. 오니는 블루베리 두 알을 입에 털어 넣었어요. 달콤한 맛이 입 안에 가득 찼어요.

 초록 잎사귀 위로 비죽비죽 올라온 줄기 끝에 파란 블루베리가 달려 있었습니다. 블루베리 숲은 초록색 바탕에 파란색 점이 많이 찍힌 그림 같은 풍경입니다. 점심밥을 먹지 못한 솔티와 오니는 블루베리를 따서 배를 채웠습니다.

 블루베리 숲은 숲 속에서도 시냇물과 먼 곳이기 때문에 동물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배가 부른 오니는 아예 모자를 벗고 풀숲에 벌러덩 누웠습니다.

“어쩌면 내가 마지막으로 보는 낮의 세계겠지. 오늘 밤 세계로 떠나게 된다면.” 오니가 말했습니다.
“또 놀러오면 되지. 나도 밤의 세계에 초대해주고 말이야.” 솔티가 말했습니다.
“우린 어떻게 얘길 주고받지?” 오니가 물었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어! 우리의 세계는 똑같다고 했지. 밤의 세계에도 이 블루베리 숲은 있을 거 아니야? 연락할 수 있을 때, 이곳에 이야기를 남기는 거야.”
“어떻게?”
“저 잘린 나무 밑동 보여? 저기에 블루베리를 따서 올려두는 거지. 한 개면 나 잘 지내고 있다, 두 개면 너에게 가고 싶다, 세 개면 나에게로 와, 하는 뜻이야.”
“넌 정말 똑똑해! 나 꼭 기억할게.”

 솔티와 오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블루베리 숲을 빠져나왔어요. 집으로 가는 길에 폭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자, 솔티는 오니에게 폭포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어요. 솔티와 오니가 샛길로 들어서자, 뒤쪽 어딘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솔티와 오니는 재빨리 움직여 나무 뒤에 숨었어요.

“대체 이것들이 어디로 간 거야? 어두워지기 전에 할아버지가 꼭 잡으라고 했는데 말이야.” 제일 앞에 오던 들쥐가 말했어요.
“잡기만 해봐라. 가만 두질 않을 거야. 먼저 좀 두들겨 주고 데려가겠어.” 뒤를 따르던 덩치 큰 들쥐가 말했어요.

 삼십 마리는 될 것 같은 들쥐 무리가 반대쪽에서 나타나 솔티와 오니가 숨은 나무 앞을 지나갔습니다. 들쥐 가족들이었어요. 솔티와 오니는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어요. 꿀벌 하나가 솔티와 오니가 숨은 나무 앞 붓꽃에서 꿀을 빨다가, 솔티와 오니가 숨은 쪽으로 날아왔어요. 꿀벌은 엥엥 거리며 솔티와 오니 주변을 맴돌았어요. 아무래도 솔티와 오니에게 아까 먹은 블루베리 향이 나는 것 같았어요. 솔티와 오니는 꼼짝 않고 있었어요. 줄지어 움직이는 들쥐 무리는 나무 앞을 지나쳐서 이제 무리의 마지막 들쥐가 저 앞 큰 나무를 돌아가고 있었어요.

 꿀벌은 계속 솔티와 오니의 눈앞에서 날다가 오니가 쓴 모자에 내려앉았어요. 그리고 슬금슬금 기어가더니, 오니의 눈이 끔뻑거리는 구멍 속으로 쏙 들어 가버렸어요. 솔티는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조용히 해야 한다는 신호를 주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어요. 오니의 눈이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지더니, 날개를 파닥이며 소리를 질렀어요. 오니가 덮어썼던 모자를 벗어 던졌고, 몸을 숨기고 있던 나무 앞으로 뛰쳐나왔어요. 큰 나무를 돌아가던 들쥐들이 일제히 솔티와 오니 쪽을 돌아보았어요.

“놈들이다! 잡아라!” 들쥐 중 하나가 소리 질렀어요.

 솔티와 오니는 반대쪽으로 쏜살 같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솔티의 네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오니는 균형을 잡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며 달렸습니다. 삼십 마리의 들쥐들도 전속력으로 솔티와 오니를 뒤쫓았어요.

 솔티와 오니는 폭포로 올라가는 샛길로 접어들었어요. 솔티와 오니의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어요. 들쥐들은 지치지 않고 솔티와 오니를 바짝 쫓았어요. 앞쪽에 있던 네 마리의 들쥐가 오니의 꽁무니에서 세 걸음 정도의 거리까지 따라 붙었어요. 들쥐가 오니의 꽁무니 깃털을 움켜쥐려고 하는 순간, 옆의 풀숲에서 덩치 큰 뭔가가 나타나 네 마리의 들쥐를 막아섰어요. 웜 선생님이었어요.

“웜 선생님!” 솔티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습니다.
“너희들을 보내고 나서 왠지 찜찜하더라니! 뒤돌아보지 말고 어서 뛰…….”

 웜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 마리의 들쥐는 웜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들쥐들은 웜의 등과 배, 다리에 각각 기어올라 날카로운 이빨로 웜을 물어뜯었습니다. 웜 선생님은 비명을 지르며 들쥐들을 몸에서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뒤따라오던 더 많은 들쥐들이 웜 선생님을 넘어 솔티와 오니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쓰러진 웜 선생님이 지렁이 같은 긴 혀로 들쥐들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습니다.

 저 뒤쪽 웜 선생님의 비명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솔티와 오니는 죽을힘을 다해 달려 올라갔습니다. 백 걸음쯤 더 올라가니 나무가 사라지고, 커다란 강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 끝엔 큰 폭포가 있었습니다.

“막다른 길이야.” 오니가 말했습니다.
“미안해. 나도 폭포는 처음 와보는 거야. 더 이상 길이 없을지 몰랐어.” 솔티가 대꾸했습니다.

 솔티와 오니가 왔던 뒤 쪽 풀숲에서 풀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풀들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솔티와 오니는 이대로 잡혔다고 생각했습니다. 풀을 헤치고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솔티 아빠였습니다.

“너희들, 괜찮니?” 솔티 아빠가 물었습니다.
“아빠!” “아저씨!” 솔티와 오니가 솔티 아빠에게 달려들어 안겼습니다.
“이제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은 안전할 거야.”
“아빠 몰래 나와서 죄송해요!” 솔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괜찮다. 우선 여기서 빠져나가…….”

 솔티 아빠가 풀숲을 향해 돌아선 순간, 풀을 헤치고 들쥐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삼십 마리의 들쥐들이 솔티 아빠와 아이들을 에워쌌습니다. 솔티와 오니는 솔티 아빠의 등 뒤에 숨었습니다.

“비켜주시오. 재판을 위해 아이를 데리고 가겠소. 아이들이 무서워하고 있소.” 솔티 아빠가 말했습니다.

 풀을 헤치고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들쥐 영감이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됐군. 그러게 처음에 순순히 내주었으면 좋지 않았겠나? 이렇게 된 이상, 재판은 필요 없겠군. 우리 식대로 처리하겠어.” 들쥐 영감이 한쪽 입 꼬리에 웃음을 매달고 말했습니다.
“어린 동물일 뿐이오. 그렇게 하면 당신들은 육식 동물들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아나? 우리가 너희들처럼 잘난 척하자고 들었으면 이렇게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우리를 위협하는 동물은 물어뜯어왔지.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야.”
“호소하겠소. 당신들이 오니에게 손을 대면 초식 세계의 질서는 무너집니다. 바위산의 가젤도 원치 않을 거요.”
“바위산의 가젤? 우리의 억울함도 쉽게 풀어주지 못하는 그 늙은 재판관? 이제 좀 바꿀 때가 되었어. 초식 세계에도 우리처럼 강한 종족의 지배가 필요한 것 같은데?”
“동물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요.”
“여기서 일어난 일은 다른 동물이 알 수가 없지. 폭포는 모든 걸 삼킬 거야. 토끼 선생 당신을 포함해 모든 이야기들을.”

 들쥐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혀 왔습니다. 솔티 아빠와 아이들은 폭포 쪽으로 조금씩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 소리가 솔티 아빠와 아이들 귀에 더 크게 들려왔습니다. 솔티 아빠가 오니에게 말했습니다.

“오니, 너만은 살 수도 있어. 우리가 폭포 옆에 닿으면 넌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려 날갯짓을 해! 그리고 너의 세계로 돌아가.”
“아니에요. 아저씨. 전 그렇게 못해요. 아직 날지도 못하고, 아저씨와 솔티를 두고 갈 수도 없어요.” 오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오니야, 여기는 다 잊어. 너의 세계에서 가장 올빼미답게 살아가렴.”

 폭포를 뒤에 세 걸음쯤 남겨 두었을 때였습니다. 들쥐의 등 뒤쪽 풀숲의 풀이 작게 흔들리더니, 츠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앞으로 다가서던 모든 들쥐들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들쥐들의 눈이 커지고 털이 곤두섰습니다. 들쥐들은 등 뒤에 무엇이 왔는지 안보고도 이미 안 것 같았습니다.

 풀을 헤치고 나타난 건, 머리가 세모인 살모사였습니다. 뱀 중에서도 강한 독을 가지고 있어서 이 숲의 큰 동물들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뱀이었습니다.

“먹잇감이 여기 다 모여 있군 그래.”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눈앞에 있는 동물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들쥐에 토끼, 그리고 저건 뭔가? 새끼 올빼미까지? 아침부터 굶은 보람이 있군.”

 뱀의 말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뱀은 앞에 있던 들쥐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세 마리를 입속에 넣고 꿀꺽 삼켰습니다. 서너 마리가 움직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들쥐들은 무서워서 얼음에 갇힌 듯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형제와 부모가 잡아먹히는 걸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뱀이 숲의 입구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갈 곳도 없었습니다.

“한꺼번에 달려가라!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들쥐 영감이 소리를 질렀지만, 나서는 들쥐는 없었습니다.

 뱀이 잡아먹기 위해 달려든 다섯 번째 들쥐는 들쥐 영감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이때예요. 빨리 도망치세요!” 다섯 번째 들쥐는 다른 들쥐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몸을 이리저리 재빠르게 움직이며 폭포 쪽으로 뛰고 있었습니다.
“아들아!” 들쥐 영감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들쥐 영감의 아들은 이제 눈을 감고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오니가 날개를 퍼덕이며 뱀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오니는 부리를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곤 우후후!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곤 들쥐에게 달려드는 뱀의 뒷목을 작은 발톱으로 낚아챘습니다. 오니는 죽을힘을 다해 날갯짓을 했습니다. 이윽고 뱀의 꼬리가 공중으로 떠올랐습니다. 오니는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 힘겹게 폭포 위 낭떠러지로 가서는, 뱀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곤, 모든 힘을 써 버렸는지, 오니도 날갯짓을 멈추었습니다. 오니가 폭포수 아래로 떨어지던 그 순간, 솔티를 바라보았습니다. 솔티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오니는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것이 솔티가 오니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

 들쥐 영감은 자기 가족을 멸종 위기에서 구해준 오니를 기억하기 위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축제를 열었습니다. 들쥐 종족의 곳간이 열리고 많은 초식 동물들이 먹고 마셨습니다.

 솔티 아빠의 학교엔 어린 동물들이 다 돌아왔고, 날이 갈수록 더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티 아빠는 선생님 한 명을 더 모시고 왔습니다. 바로 웜 선생님입니다. 들쥐들에게 물려 죽기 직전까지 갔던 개미핥기는 이제 몸이 다 회복했습니다. 들쥐들과 미어캣 의사 선생님이 정성껏 돌본 덕분에 일찍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니가 폭포 아래로 떨어진 날부터 낮이 일곱 번 바뀌는 동안, 솔티와 솔티의 부모님, 들쥐들, 그리고 소식을 들었던 초식 동물들은 폭포 아래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오니가 떨어뜨린 뱀은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오니는 찾지 못했습니다.

 솔티는 오니를 잃고 난 이후 숲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오니가 꿈에 나타나 울면서 잠을 깨곤 했습니다. 오늘은 엄마와 함께 블루베리를 따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두 계절만입니다. 숲의 색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가을이 되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서 줄기에 달린 블루베리도 많이 줄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블루베리도 한동안 못 먹겠구나.”

 블루베리 숲에 들어서니 솔티는 오니와 함께 했던 기억을 자연스레 떠올렸습니다. 오니와 함께 누웠던 곳도 살펴보았습니다. 엄마가 블루베리를 따는 동안, 솔티는 블루베리 숲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저 잘린 나무 밑동 보여? 저기에 블루베리를 따서 올려두는 거지. 한 개면 나 잘 지내고 있다, 두 개면 너에게 가고 싶다, 세 개면 나에게로 와, 하는 뜻이야.’

 솔티는 혹시나 하고, 잘린 나무의 밑동에 다가갔습니다. 솔티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나무 밑동의 한 가운데에, 블루베리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솔티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곤 옆에 있던 블루베리를 따서 나무 밑동에 하나 더 올려두었습니다.

 솔티야, 이제 가자. 엄마가 솔티를 불렀습니다. 구름이 걷히면서 햇살이 나무 사이를 통과해 나무 밑동을 비추었습니다. 나무 밑동 위에 놓인 두 개의 블루베리가 햇살을 받아 사금처럼 반짝였습니다.

-The End-


P.S.

 이제 끝이 났습니다. 5일간 솔티와 오니의 이야기 속을 헤맸습니다.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는 동안엔, 전 두 개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솔티가 살던 낮의 세계와 오니가 살던 밤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이듯, 저의 현실과 이야기의 세계도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로 존재합니다.
 가벼운 동화 한 편을 쓰겠다, 고 시작했지만 저에게도 꽤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 인물들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얼마 되진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주신 이웃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웃들의 감상과 격려가 쓰는 동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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