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마시던 우동의 국물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바다였다. 비록 희석된 간장이 만들어 내는 거무스름한 빛깔이었지만, 잠깐 동안 내겐, 바다로 보였다. 그릇 밑바닥에 조미료 알갱이들이, 조류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구르는 모래와 작은 돌처럼 스멀스멀 움직였다. 다시마 조각은 물에 내어 맡긴 몸짓이 자유로운 해초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자신을 보여줄 듯한 인상으로 시선을 잡아끌어 놓고선, 물 속 어느 지점에서 시선을 홀로 내버려두고 모습을 감춰버리는 바다, 그것이 그릇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뜨거운 국물이 목줄기를 타고 흘러, 내 뱃속, 어딘가에 터를 잡고 고인다. 난 우동국물 맛 나는 바다를 마셨던 것이고, 내 뱃속은 바다의 그 거대한 몸뚱이를 송두리째 간직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우동 국물을 흐릿한 눈을 하고서는 보고 있을 그때였다. 나와 똑같은 종류의 우동을 시켜먹었던, 대각선 방향의 앞 테이블의 꾀죄죄한 한 사나이가 참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눈빛으로, 국물 속의 잘게 썰린 해초를 수면 밖으로 건져 올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는 몰두하고 있었다. 그도 바다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옆으로 비스듬히 바라다 보이는 그의 턱선은 날카로웠다. 제때 깎지 않은 거뭇한 수염으로 미루어 무척 바쁜 사람일 거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전혀 없으나, 그의 모습에서 생활의 고달픔을 읽어 내었다면, 이것은 착각일까. 그의 날카로운 탁선은 마치 고달픔의 숫돌로 깎고 다듬은 것 같았다.
가만, 난 저 사나이를 본 적이 있다. 작년, 전국에 카스테라 붐이 일었을 때, 우리 동네에도 카스테라 가게가 개업했다. 노란 간판에 화려한 외장으로 꾸민 그 가게엔 우리 동네 뿐 아니라, 주변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카스테라를 받으려면 빵이 나오는 시간보다 30분은 일찍 가서 줄을 서야 겨우 한 두 개 살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때 저 사나이는 하얀 위생 모자를 쓰고, 말끔한 얼굴로 긴 칼을 들고 오븐에서 나오는 카스테라를 조금 미숙한 솜씨로 자르고 있었다. 개업 첫 날이라, 본사에서 내려온 직원이 저 사나이 옆에서 카스테라를 만들고 판매하는 모든 공정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나 역시 카스테라를 맛보기 위한 긴 대열에 서서 겨우 하나 샀는데, 적지 않은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날 맛 본 카스테라는 무척 맛이 좋았다.
카스테라 가게의 영화는 그리 길지 못했다. 그 가게가 개업한 지 일주일 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카스테라 제조 과정에 대한 위생 문제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방송 다음 날, 평소 긴 줄이 늘어서던 가게 앞은 고요했다. 가게는 한동안 계속 영업을 했다. 사람들은 가게 앞을 지나면서 그 방송을 얘기를 했다. 그리고 가게에 눈길만 몇 번 주고는 그냥 지나쳤다. 자기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가게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마치 사명인 양 행동했다. 개업 첫 날 1시간을 줄서서 겨우 빵을 들고 기쁨의 미소를 지었던 복덕방 셋째 딸도, 우리 동네에도 드디어 카스테라 집이 생겼다고 만세를 부르던 중국집 둘째 아들도, 더 이상 노란 간판의 카스테라 가게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문을 열었던 가게는, 문 앞에 ‘점포 정리’라는 네 글자만 써 붙이고 굵은 자물통이 걸렸다. 카스테라 붐에 가장 늦게 합류한 우리 동네 가게는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한때 노란 간판을 단 카스테라 가게의 사장이었던 사나이는, 이른 나이에 회사를 정리하고 나올 때 받은 퇴직금을 날리고 이젠 다시 누군가의 피고용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그는 수염을 말끔하게 깎거나, 위생 모자를 쓰거나 매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일주일간 꾸었던 그의 단꿈은 허공에 흩어졌고, 그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 우동 그릇 밑바닥의 해초 조각처럼 흐물흐물한 모습으로 삶을 이어갔다.
그 사나이는 우동국물 위로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어떠한 계기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된 건지, 또는 가족을 부양하는 일에 관한 어려움 따위를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앞으로 더 얼마나 이러한 생활을 해야만 부족한 돈 때문에 아웅다웅하는 지긋지긋한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지, 셈도 한 번 해볼 것이다. 만약 그때 카스테라가 아니었다면? 하는 생각은 수백 번도 더 했겠지. 날카로운 수염 자국을 갖다 대면 따가워 멈칫거리며 놀란 눈을 하고, 작은 손으로 볼을 쓰다듬는 아이를 떠올리며 그나마 스스로 위안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도 결국 가족에게서 고달픈 삶에 대한 보상을 구하려 하고 있다. 그는 그저 생활을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꾸깃한 돈을 꺼내어 우동 값을 치렀다. 그리곤 순식간에 나가버렸다. 나도 남은 바다를 마저 마시고 일어섰다.
그 사나이의 무심한 옆얼굴은 나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았다. 그 옆얼굴은 내게 말했다. 생활이라는 골칫거리가 다만 너의 것만은 아니라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고통과 갈등의 사슬이 너만 묶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난 고통이 나만의 소유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남긴 강렬한 인상으로 인해, 난 착각하고 속았던 것이다. 내가 마신 국물이 이 세계 전부의 바다인 양, 그 거대한 몸뚱아리를 바로 내 자신의 뱃속에 채워 넣었다고 착각한 것처럼.
바다는 어디까지나 인류 전체의 것이고, 생활의 질고 또한 나만의 것이 아니다. 분명 나는, 우동국물 맛 나는 우동을 마신 것이고, 바다에 대한 인상은 그저 일순간의 연상이었노라, 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엽편소설 연재 목록
#네 번째- 물루의 유언 : https://steemit.com/kr/@kyslmate/3gmu1q
#세 번째- 유리잔의 진실 : https://steemit.com/kr/@kyslmate/6ad5wa
#두 번째- 숙임이의 사랑 노래 : https://steemit.com/kr/@kyslmate/6aed4t
#첫 번째- 날지 못하는 새, 조(助) : https://steemit.com/kr/@kyslmate/7mmtoe
엽편소설이란, 나뭇잎처럼 작은 분량의 소설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