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 영혼의 우주 관람차 (4화)

kyslmate(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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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치유





 은재는 순간 발가락 끝을 전갈의 독침으로 찔린 것 같은 날카로운 고통과 소름이 발끝에서 머리끝으로 전해지는 걸 느꼈다. 기억 속에서 두터운 장막으로 가려 놓은 부분이 열리고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진과 현우, 은재 셋은 언제나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였다. 6년 전 8월, 막 인공 호수가 완공되고, 클래스 하이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비가 와서 습기가 가득한 날에, 노란 비옷을 입은 현우는 주진의 집에 먼저 들렀다. 놀자고 했는데 주진이 바빴었다. 주진의 집 지붕에 물이 세서 주진과 주진의 엄마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은재 집엘 들렀다. 은재는 아예 집에 없었다. 외할아버지와 장을 보러 나갔었다. 결국 현우는 혼자 마을을 내려갔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동산교를 건너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갔다. 아파트 공사 현장은 전날 내린 비로 곳곳이 움푹 파인 웅덩이였다. 현우는 그 날 오후, 공사 현장의 한 웅덩이에서 발견되었다. 그 웅덩이는 어른 키보다 높은 흙탕물로 가득 차있었고 현우의 몸을 덮은 노란 비옷이 웅덩이에 둥둥 떠 있었다. 그 날 저녁 뉴스는 현우가 공사 현장 옆을 지나다 발을 헛디뎌 사고가 났다고 보도했다.

 은재에게 그 소식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현우가 죽었다고? 어제까지 함께 술래잡기를 하고 비석치기를 하던 그 현우 말이야? 에이, 아니지. 잘못 안거야. 현우는 그렇게 될 리가 없어. 은재는 충격에 일주일 동안 밥을 먹지 못했고, 잠도 자지 못했다.

 그런 현우를,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현우를, 주진이 지금 보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황당하면서도 가슴이 서늘했다. 그 순간 은재는, 주진이 미쳤던 게 현우와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이라기보다 확신에 가까웠다. 은재 자신도 현우만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고 그 감정을 어찌 할 수 없어서 그저 없었던 일처럼 두꺼운 장막 뒤에 두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 주진은 더 견딜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안간힘을 쓰면서 자신의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주진은 하이드로 변하기 직전인 지킬 박사 같았다. 은재는 두려웠다. 은재는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진아, 현우가 보인다고? 현우가 어떤 모습이야? 현우가 왜 나타나는데?”
 “으윽… 물에 얼굴이 불어서… 노란 비옷을 입고.” 주진은 숨을 헐떡거렸다. 이마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붉게 변한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진아, 날 봐. 현우는 이제 여기 없어. 네가 보는 건 가짜야. 네가 만들어내는 생각일 뿐이야. 나도 그랬어. 현우만 생각하면…”

 은재의 눈에서도 눈물이 터졌다. 은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손으로 입을 막고 꺽꺽 바람 소리만 내며 울었다. “나도 그랬어… 나도.” 은재는 그 말만 반복했다. 눈물을 2리터는 쏟아낸 것 같았다. 바깥이야 어떻게 돼도 상관없었다. 그때 은재의 손에 따뜻한 뭔가가 얹혔다. 주진의 손이었다. 그들이 있는 그곳이 한 순간 가로등 불이 비춰드는 작은 공간에서 우주의 한 곳으로 변했다. 은재와 주진은 공중으로 몸이 뜬 채였고, 그들이 흘린 눈물방울은 그들의 주변에 떠다녔다. 그 눈물방울은 어디에도 스며들지 못했다. 흘러내린 그대로 정처 없이 떠다니기만 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은재와 주진은 숨조차 쉬고 있지 않았다. 은재는 주진을 바라보았다. 주진도 은재를 보고 있었다. 은재가 우는 걸 지켜보던 주진이 입을 열었다.

 “나 그때 웅덩이에 빠진 현우를 봤어. 내가 갔을 땐 현우가 얼마나 오래 웅덩이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어. 느리게 허우적대며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거야? 현우가 아직 살아 있을 때?”
 “맞아. 난 현우가 우리 집에서 떠난 뒤에 얼마 안 있어 현우를 쫓아갔어. 현우랑 놀고 싶어서 엄마한테 사정을 했지. 현우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서 골목을 몇 번이나 돌았어. 결국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어서 마을 입구로 내려갔어. 그리고 다리를 건넜지. 아파트 공사 현장이 보였어. 흙탕물로 가득했지. 공사 현장 출입을 막는 울타리는 물에 쓸려 반쯤 열려 있었어. 그때 봤어. 저 멀리 한 웅덩이에서 현우의 노란 비옷을. 난 다른 웅덩이들을 피해 급히 달려갔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오르락내리락 하는 현우와 눈이 마주쳤지만 현우는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어. 소리를 지르고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어. 현우는 거의 의식을 잃었던 거야. 난 주변에서 현우를 건질 만한 뭔가가 있는지 찾아봤어. 전부 다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어. 내 우산을 접어서 현우에게 내밀었지만, 현우는 잡을 힘이 없었어. 현우 눈엔 우산이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어. 주변엔 아무도 없었어. 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어. 현우에게 어른을 불러올게, 라고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현우가 가늘게 눈을 떠서 날 바라보았어. 그러곤 현우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다시 올라오지 않았어.”
 “네 탓이 아냐. 넌 최선을 다했어.”
 “아냐. 나 때문이야. 현우를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어.”
 “그럼 내 탓도 있어. 내가 할아버지랑 장에 간 게 잘못이야.”
 “그럼 우리 탓이야.”
 “맞아 우리 모두의 탓이야.”

 은재와 주진이 그 좁은 스펀지 산에서 기어 나와 통로로 내려섰을 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거기에 왔었던 남자들도, 함께 들어왔던 아이들도 그곳엔 없었다. 은재와 주진은 개구멍으로 스펀지밥을 빠져나와 마을 골목길을 걸어 올라갔다. 상구네 스피치의 짓는 소리가 가끔 들릴 뿐, 주변은 고요했다. 은재와 주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기만 했다. 은재의 반찬 가게 앞에 다다랐을 때, 둘은 멈춰 섰다.

 “처음이야. 내가 미치기 전에 멈춘 건.”
 “네 정신이 돌아버리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거야. 나라도 그랬을 거야.”
 “내 안에 큰 덩어리 하나가 빠져나간 느낌이 들어.”
 “쏟아낸 눈물이 아닐까.”
 “아니, 그것보다 더 무거웠던 거.”
 “좋은 일이겠지?”
 “그랬으면 좋겠어.”

 현우가 죽었을 때, 죽어버린 건 현우뿐만 아니었다. 주진과 은재의 일부도 죽어버렸다. 아무도 주진이 미친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나가 죽고, 하나가 미치자 사람들은 그저 ‘재수 없는 동네’라는 말로 모든 걸 설명하려 했다. 그 설명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말이었다.

 은재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는 늦게 들어온 은재를 나무랐다. 은재는 그래도 엄마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따뜻한 엄마 목에 얼굴을 비볐다. 외할머니가 화장실문을 열고 나오면서 은재에게 소리쳤다. 이 노무 지지배, 지금이 몇 신데 이렇게 늦게 다니는 거야!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은재한테 심부름 시킨 거 깜빡하고 늦었다고 타박했네.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는 은재의 뒷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엄마는 은재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은재야, 생일 축하해. 그리고 엄마가 미안해.



To be continue. 5화에 계속.


1화-재회 : https://steemit.com/kr/@kyslmate/1
2화-생일 : https://steemit.com/kr/@kyslmate/2
3화-옛 친구들 : https://steemit.com/kr/@kyslmate/3
5화-위협 : https://steemit.com/kr/@kyslmate/5


P.S.

 처음부터 이 소설을 보신 분들이 아니라면, 피드에 글이 뜰 때 그냥 스킵하시겠지요. 긴 연재소설을 쓰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울타리를 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내 글을 더 보게끔 해야 하는데 오히려 진입 장벽을 높이는 꼴이죠.

 전 에세이를 쓰는 것도 참 좋아하지만, 소설을 쓸 때 느끼는 희열은 맛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요. 등장 인물의 모든 감정을 느끼고, 전지전능한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을 살피지요. 때론 등장 인물이 창작자인 나도 모르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깜짝 놀라며 얼른 받아 적지요.

 어쩌죠. 전 소설을 쓰는 게 너무 좋아서, 끝내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건 글을 보는 사람과 글을 쓰는 제 생각의 큰 괴리일 수도 있습니다. 얼른 소설을 마무리하고 말랑한 에세이나 다시 쓰라고 충고하고 싶은 분도 있을 수 있겠지요. 제 안에서 외치는 소리 중 하나입니다. 어찌 됐든, 이 즐거움을 조금 더 가져가고 싶습니다. 이번 주는 <소설 주간>으로 삼고 계속 올리렵니다. 다음 주부턴 조금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꾸준히 보아 주시는 이웃들, 정말 감사합니다. 거친 초고에도 격려를 보내주셔서 감사드려요. 지면과 이웃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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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이미지 만들어 주신 ceoooofm@ceoooofm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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