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명 : 적목리 공동생활 유적지 2(赤木里 共同生活 遺跡)
○ 위 치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 문화재 : 기평군 향토문화재 제13-2호
이곳은 가평역에서 걸어서 하룻길인 적목리 신앙공동체 유적지이다. 해방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일제의 수탈로 밟히고 찢긴 우리 민족의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깊이 패어있는 이 계곡은 민족 수난의 현장이다.
대한(大韓)의 젊은이들은 태평양 전쟁터로 잡혀가고 꽃다운 처녀들이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가던 그 암울했던 시대, 일제의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강제징용과 징병, 그리고 교회 해산 명령을 목숨을 걸고 거부한 70여 명의 한국재림교회(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신자들이 스스로 일어선 지도자 신태식, 반내현 선생의 지도하에 이곳을 찾아 들었다.
그들은 1943년 9월 15일부터 해방 뒤인 1945년 8월 22일까지 삼림이 무성했던 이 계곡에 칩거하며 일경(日警)의 눈을 피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면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민족혼을 불태우며 신앙심을 지켰다. 그들은 유무상통하며 자급자족하는 신앙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밤마다 조국 광복을 기원했다. 일부 지도자들은 일제의 패망을 확신하고 사선(死線)을 넘어 경향 각지로 다니며 신앙심을 일깨우고 민족을 계몽했다.
여기는 신앙심과 민족혼의 요람이며, 민족 신앙의 성지로서 길이 보존되어야 할 소중한 배움의 터요, 오는 세월 동안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될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사적지이다. 1944년 겨울 일경의 급습이 있은 뒤 신태식 · 노사라 가족 및 20여 명의 청년들이 설악산과 금강산 지역으로 피신한 뒤 일부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이곳에서 가평 방향 1.2km 떨어진 곳으로 옮겨 있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이곳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집단 항일 신앙공동체 유적지이다.
적목리 신앙공동체 유적지를 오르기전에 아담한 폭포가 있습니다.
침례터도 있고 교회터, 집터도 있습니다. 일본군의 눈을 피헤 깊은 산속까지 들어와 초근목피로 연맹하여 삶을 이어 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픔니다.
아직도 곳곳의 흔적이 남아 았습니다. 이제는 멧돼지들도 와서 놀고 갑니다.
적목리 신앙공동체 유적지에서 내려오는 길에 다람쥐 먹이들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다람쥐도 먹고 사람들도 나눠먹고 가끔은 멧돼지도 먹습니다.
오늘도 향토문화재를 찾아 떠나는 인동초향기 블로그입니다.
감사합니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