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추리 소설 속에 나타난 조선인 강제징용노동자 - 시마다 소지,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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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에 관한 글을 쓰면서, 미스터 펫과 찬호께이 모두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 수상자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시마다 소지에 대해서도 언젠가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지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비밀 합의 문제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생각난 이야기가 있어서 끄적여 볼까 합니다.

시마다 소지는 일본의 본격파 추리소설가로 아주 유명합니다. 80년대 초에 데뷔한 중견 작가로, 데뷔작인 <점성술 살인사건>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대를 다시 본격 추리물의 시대로 되돌려 놨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시마다 소지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매력적인 탐정들로는 '점성술사 탐정' 미타라이 키요시와 '미남 형사' 요시키 타케시가 있습니다. 특히 미타라이 키요시의 데뷔작인 <점성술 살인사건>은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사체 분할이라는 트릭을 표절해서 한번 난리가 나기도 했었죠. 제가 두 탐정 중에 더 매력을 느끼는 탐정은 '미남 형사' 요시키 타케시입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 역시 요시키 타케시가 주인공인 작품이구요.

요시키 타케시는 말그대로 '미남 형사'입니다 (...) 그렇다고 해서 요시키 형사가 나오는 작품들을 경찰소설로 분류하긴 좀 힘들 것 같은데, 사건을 쫓는 방식이 거의 조직적인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개인 플레이에 가까운 모양새거든요. 오히려 요시키 형사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열차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모두 열차에서 일어나거나, 열차와 관련있는 사건들입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같은 고전 명작들도 있듯이, 달리는 열차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은 많은 추리소설가들의 가슴을 뛰게 하나 봅니다. 사실 달리는 열차라는 배경 자체가 밀실 살인 사건의 설정으로 아주 훌륭하죠. 게다가 자연스레 철도를 통해 전국 곳곳에서 사건을 발생시킬 수 있으니, 일종의 관광 미스터리로 활용하기도 좋습니다. 실제로 추리소설가들이 각지의 지방 잡지 등에서 글을 의뢰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방 잡지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열차 미스터리를 통해 그 지방의 모습을 잘 그려내면서 재밌는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

그런데 열차 미스터리의 단점이 하나 있다면, 현지의 열차와 철도 노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열차가 엄청나게 잘 발달한 일본의 경우, 복잡한 노선도와 시간표를 활용한 명작 추리소설들이 많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쵸의 <점과 선> 같은 작품은... 정말 굉장하죠. 그런데 제가 일본 철도에 대해 빠삭한 철도덕후가 아니라서 좀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이를테면, 'KTX 살인 사건'이라면 그나마 느낌이 확 오지만, <이즈모 특급 살인>이라고 하면... 잘 인상이 안와닿겠죠? 그래도, 요시키 형사 시리즈의 경우 열차 미스터리면서도, 철도 노선도 같은게 핵심 트릭이라기 보다는 배경으로만 활용되는 편이라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의 또다른 특징은, 살인 사건들이 초자연적 현상에 가까울 정도로 기괴하다는 점입니다. 첫 작품인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은 죽은 피해자가 열차에서 유령처럼 목격되는 사건입니다. 두번째 작품인 <이즈모 특급 살인>은 사체가 무려 칠분할 되어 각 부위가 열차로 전국으로 퍼져나가죠. 엄청 기괴합니다. 미남 형사 요시키의 가슴 아픈 과거사가 공개되는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에서는 아파트 맨션 한 가운데에 흐느끼는 바위와 갑옷 유령이 목격되구요. 오늘 이야기할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열차 안에서 갑자기 난장이 광대가 죽어버리고, 그 시체가 사라집니다. 게다가, 설원에서 갑자기 하얀 거인이 나타나서 열차를 들어버리죠! 이건 무슨 심령 미스터리물인가 싶을 정도로 기괴한 사건들이 반복되는 시리즈가 바로 요시키 형사 시리즈입니다. 물론 이 모든 미스터리들은 그 이유가 분명한 트릭들로, 그 정체가 요시키 형사의 추리로 낱낱히 밝혀지는게 이 시리즈의 재미입니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라는 복잡한 제목의 작품은 현재까지 소개 된 요시키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데요, 본격 미스터리 작가인 시마다 소지가 쓴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소비세 도입으로 사회가 떠들썩한 시기에, 도쿄의 한 상점가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치매에 걸린 부랑자로 보이는 한 노인이, 소비세를 내야한다고 요구한 상점의 여주인을 칼로 찔러 죽인 것입니다. '소비세 12엔 살인 사건'으로 유명해진 이 사건은 치매에 의한 살인이 아니냐는 결론이 나지만, 요시키 형사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낍니다. 노인은 유아 유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30년 가까이 복역 생활을 하다가 풀려난 전력이 있기에, 요시키 형사는 노인의 과거를 알아보기 위한 조사에 들어가죠.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엔자이'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엔자이'란 '원통한 죄'라는 뜻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한국에서도 영화 <재심>으로 유명해진 박준영 변호사님이 익산 택시기사 살인 사건이나 삼례 나라슈퍼 살인 사건 등의 누명 사건들을 재심을 통해서 밝혀내서 사회적 이슈가 된 바 있습니다만, 일본의 경우에는 이 '엔자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합니다. 일본은 검찰의 기소율이 굉장히 높은 국가로, 사법부의 오심을 인정하지 않는 사법 관료주의가 굉장히 팽배한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엔자이' 사건들이 있습니다. 이런 엔자이 문제를 다룬 추리소설로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13 계단>이 아주 유명하죠.

책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사건의 용의자인 노인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노인의 정체는 바로 전쟁 중 강제징용된 조선인들과 관련이 있죠. 전후 홋카이도 설원을 달리던 열차에서 벌어진 기괴하고 환상적인 사건의 이면에는, 조선인에 대한 강제 징용, 그리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악의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깊숙히 들여다 보아야 할 점은, 이 책이 쓰여진 시기인 1989년이라는 시간대입니다. 1989년은 일본에서 소비세 도입된 해입니다. 그 뿐 아니라 쇼와 천황이 세상을 뜨고, 일본의 연호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뀐 시기이기도 하죠. 이 작품은 쇼와 시대를 마무리하는 1989년의 시점에서, 사회가 '소비세 12엔'에 떠들썩하면서도 쇼와 시대의 역사적 과오라 할 수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조선인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반성도 조망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나갔던 쇼와 시대에 대해 역사적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된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가 오늘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에, 시마다 소지라는 촉망 받는 추리소설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은 일종의 '문학적 스캔들'로 취급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마다 소지는 요시키 형사를 통해서, "지독한 꼴을 당하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라고, 진심을 담아 사과합니다.

오늘 이 소설이 생각난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밀 합의한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가 다시 한번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은 비단 일본의 아베 정권과 지난 박근혜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인 강제 징용노동자들의 문제를 다시 한번 촉구하기 위한 움직임 중에서는 '강제 동원 노동자상' 운동이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녀상'을 통해 표현했듯이, '강제 동원 노동자상'을 통해 그 역사를 잊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강제 징용 노동자상'은 한국에서도 아직 제대로 발 붙일 곳이 없습니다. 용산역 앞에 국내 최초로 세워진 노동자상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한국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용산역 광장을 관리하는 국토교통부는, 노동자상을 건립하기 위해 연락한 주최단체들의 기부 제안이나 건립 허가 요청을 계속해서 묵살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

'광복 70년, 노동자상이 발붙일 곳은 없었다' - https://storyfunding.kakao.com/m/episode/32699

아직 한국에서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들이 얼마나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벌써 30년 전에,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해서 대중들에게 알린 작품을 쓴 시마다 소지를 떠올리게 된 것은 이러한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시마다 소지는 이 작품 뿐 아니라, 한국에는 번역이 되지 않은 다른 작품들에도 일본의 강제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룬바 있습니다. (최근에 트위터에서 좀 우익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찾아보니 트위터가 없어져서 확인하기 어렵네요.) 상당히 매력적인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니, 추리소설이 땡길 때 한번 쯤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시마다 소지,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알라딘 링크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80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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