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처음으로 소설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엔 연극 이야기입니다.
오늘 정말 오래 간만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 편 보고 왔습니다.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이라는, 기나긴 제목의 연극입니다.
사실 평소에 연극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만, 오늘 보고 온 연극은 대학 시절 후배가 연출한 작품이라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 다녀왔습니다. 단순히 지인의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미인도 위작 논란'이라는 소재 자체에 대해 관심이 있기도 했구요. '미인도'를 다룬 작품인 만큼, 연극 포스터도 미인도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올 해 초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 '미인도' 위작 논란이 비중있게 다뤄진 만큼 많이들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간단하게 먼저 '미인도' 위작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움직이는 미술관'이라는 전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대중에게 공개합니다. 대중들에게 '미인도'가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미인도' 아트 포스터 역시 많이 팔려나가게 되는데, 천경자 화백이 그 아트 포스터를 보고 '미인도'는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합니다.
천경자 화백은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서 "자신이 낳은 자식을 부모가 몰라보는 일이 있느냐"며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은 천경자 화백이 진품이 아니라고 내세운 근거들이 불확실하며,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의 감정 결과 진품임이 입증되었다며 이를 반박합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미인도' 위작 논란은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져, 천경자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최근의 상황은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미인도'가 진품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대다수인 듯 합니다.
특히, 2017년 들어서는 '미인도' 위작 논란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를 부정 축재범으로 몰기 위한 정치적 음해와 관련 있다는 주장이 새로 제기되면서, 단순히 미술품의 진위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일종의 정치적/역사적 성격을 띄는 논란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논란의 '미인도'
연극은 '미인도' 위작 논란이 촉발된 1991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2학예실을 무대로 시작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2학예실은 대중들과 함께하는 미술이라는 슬로건으로, '움직이는 미술관'이라는 순회 전시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주인공인 신입 학예사 '유예나'는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발굴해, 순회 전시의 흥행에 큰 몫을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최초 공채 1기 학예사이자, 선배 학예사들과 출신 대학이 다른(아마 서울대 출신이 아닌 듯 합니다.) 예나로서는 이번 전시회가 큰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경자 화백이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되면서, 예나는 큰 위기를 맞이 하게 됩니다. 작가와 미리 협의하지 않은 절차 상의 문제에다가, 언론의 지속되는 문의까지. 선배 학예사의 노골적인 불평 속에서, 예나는 어떻게든 자신이 책임을 지려 합니다. 하지만 학예실장은 위작임을 인정하는 순간 국립현대미술관의 권위가 가짜가 되는 것이라면서,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묘한 말을 흘립니다. 예나는 '미인도'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진품'이도록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합니다.
1991년은 이른바 '분신 정국'이 펼쳐진 해이기도 합니다. 87년 6월 항쟁이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실패로 끝난 이후, 3당 합당으로 정국을 주도하게 된 노태우 정권은 공안 통치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의 구타로 사망하자, 학생 운동을 중심으로 다시 격렬한 시위가 펼쳐집니다. 그 가운데, 한 달 사이에 여덟명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분신 자살로 공안 정권에 대해 저항합니다. 주인공 '예나'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술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학예사가 된 예나에게 과거 학생 운동 시절의 선배가 찾아오고, 학교 친구의 분신을 알립니다. 예술로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학예실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가짜'를 '진짜'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예나의 마음 속은 타들어갑니다. 그 동안 TV에서는 국가가 '진짜'를 '가짜'로 만든 대표적인 사건인 김기설 열사의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이 보도 되고 있지요.
시간이 흘러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제2학예실의 실장이 된 예나는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만이 아니라 이 작품을 두고 펼쳐질 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냐며 논란의 '미인도'를 다시 대중 앞에 공개합니다. (실제로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은 '균열'이라는 이름의 소장품전을 통해 '미인도'를 전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극이 마무리 됩니다.
연극에는 문외한인 제가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평가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재밌고 흥미로운 연극이었습니다. 시놉시스만 본다면야 굉장히 진지한 작품입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적지 않아 관객들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연극이었구요. 단순히 재미 있는 시간이었다, 를 넘어서 좀 더 작품에 대한 저의 생각을 나눠보자면...
사실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미인도'의 진위에 대한 문제 보다는, 그 '진위'를 자신들의 편의에 의해 결정하고 조작하는 국가 권력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주인공 예나는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상징되는 권력에 편입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씁쓸하게 끝나죠. 그러한 권력의 문제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을 둘러싼 담론 운운하는 마지막 대사야 말로 예나가 선택한 길의 기만성을 보여줍니다.
87년 6월 항쟁은, 그 역사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로 끝난 혁명이었습니다. 연극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1991년, 다시 열사들의 죽음이 이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그 실패는 분명한 것이구요. 6월 항쟁의 실패는 단순히 한 번의 실패가 아니라, 이른바 '직선제'라는 이름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도입 됨으로서 저항의 주인공이었던 시민들을 체제 내화 시켰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실패였습니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연극에서 보여주는 제 2 학예실의 분위기가 바로 그러합니다. 예나는 '국립현대미술관 공채 1기'입니다. 이는 이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이 학예사를 뽑을 때 '공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여기서 '공채'는 마치 '직선제'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공안통치였듯, 공채로 뽑힌 예나는 제2학예실의 권력 관계를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직선제의 도입으로 마치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는듯이, 죽음으로 항거하는 학생들에게 냉소적인 선배 학예사들의 모습은 1991년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인도' 위작 논란의 도화선이 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 프로젝트부터가 사회적 변화에 따르는 문화정책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소재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이라는 명칭이 보여주듯 한국 미술계에서 강고한 권위를 가진 곳입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군부 정권 시절에는 더 그러했죠. 86년까지 덕수궁 석조전(지금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에 위치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관의 상설 전시 기획 보다는 집단적인 대여 전시 공간으로 주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는 '국립예술공간'이라는 권위에 편승하고 싶어하던 미술계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권위'의 상징인 국립현대미술관이 1990년부터 '움직이는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순회 전시를 시작한 것은 극에서도 이야기하듯 '문화부 발족'을 계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문화공보부라는 이름으로 국정 홍보, 방송 및 언론, 문화 정책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 혹은 잡다한 - 업무를 처리하던 것이, 1990년 3월 독립된 부처로 '문화부'가 출범하면서 한국의 문화정책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른바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정권 홍보 및 민족의식 고취, 예술에 대한 관리와 통제에 주력했던 과거와 달리 문화 수용자인 국민의 문화 향유를 확대하겠다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움직이는 미술관'이야 말로 그러한 새로운 정책 방향에 잘 맞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동안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던 미술 전시를 전국 순회 형식으로 확대하면서 대중이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그 의도였죠. 이러한 시도를 시민의 문화권을 위한 '문화의 민주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재밌게도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요 기획 전시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말로 유명한 독일 예술가 요셉 보이스의 전시였습니다. 실제로 요셉 보이스 전시가 있었을 뿐더러, 심지어 극 내에서도 이를 반영하여 요셉 보이스전을 준비하는 과정이 한 소재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요셉 보이스의 이 유명한 경구는 이른바 '문화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모토이기도 하죠. 앞서 이야기한 '문화의 민주화'와 '문화 민주주의'는 시민의 문화권을 옹호한다는 측면에서 언뜻 유사해 보이지만, 실은 그 결이 좀 다릅니다. '문화의 민주화'가 기존의 예술가들과 예술 작품들이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면, '문화 민주주의'란 예술의 수용자로서의 시민 보다는 시민의 직접적이고 아마추어적인 예술 창조 활동과 예술 교육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극 내에서 선배 학예사의 대사 중에는 "매번 똑같이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만 전시"하는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에 대한 불만 섞인 대사가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컨템포러리'는 안하고 일종의 대중 영합적인 전시만 하는게 아니냐는 푸념인데, 여기에 대해 또 다른 선배 학예사가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를 대중들이 봐야 요셉 보이스도 보는거 아니겠느냐"는 말로 달래죠. 이는 '문화의 민주화'로 나아가고 있다고 치더라도, 정작 '문화 민주주의'로는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토로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러한 대사가 '직선제'로 '민주화'는 이뤘다손 치더라도, 정말로 '민주주의'는 오지 않은 1991년의 정치적 현실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좀 너무 나간 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
요셉 보이스. 작중에서 그의 신화화 된 전쟁 경험에 대한 '기억 조작'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세세한 디테일에서까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촛불 집회 1주년을 기념하듯이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이 개봉한 시점에서, 오히려 우리가 더 기억하고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는 사건들은 87년 6월 항쟁 자체보다는 그 실패로 인해 발생한 1991년의 비극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구요. '진짜냐 가짜냐' 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권력의 작동 구조를 봐야한다는 작품의 메시지가 강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작품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참, 아마 다들 알아채셨겠지만 '미인도' 위작 논란을 다룬 연극에 대한 글인 만큼 잠깐 장난을 쳐봤습니다 ^^; 위에서 '미인도'라고 링크한 이미지는 사실 정말 천경자 화백이 그린 작품인 '장미와 여인'이라는 그림입니다. 논란의 '미인도'는 이 '장미와 여인'을 모작한, 위작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중론인가 보더라구요. 문제의 '미인도'는 사실 아래 그림입니다! '미인도'만 보면 모르겠지만, 두 그림을 함께 보면 확실히 비슷하지만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미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