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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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티밋 뉴비 kunastory@kunastory입니다.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역사에 대해 되짚어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을 밝힌 곳은 어디인지 알아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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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전등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궁중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882년 5월 22일 한미통상협정이 체결됨에 따라서 초대 주한공사 후트가 임명되어 이듬해 5월에 부임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같은해 8월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하고 홍영식을 부대신으로 한 답례사 겸 군주특파협판 교섭 통상사절단을 미국에 보냈다.

이들 사절단은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새로운 농기구를 비롯한 여러가지 기계류의 수입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 때 미국에서도 발명된지 얼마 안되는 전기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고 궁중에 전등발전시설을 하기 위해 에디슨 전등회사로부터 전기기사 윌리암 맥케이가 내한함과 동시에 설치공사에 착수했다.

이 발전설비는 3kw 증기발전기 2대로서 건청궁내 뒤편 향원정 부근에 설치되었으며 우선, 백촉광 "아크" 등(서치라이트) 2개를 경복궁과 그 앞뜰에 가설하여 점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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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궁중점등은 1879년 미국의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지 실로 8년 뒤의 일인 동시에 우리나라에 문명의 상징인 전기불이 켜진 시초가 된다.

이 전등이 켜지자 장안의 국민들이 "그저 불가사의"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으나 처음에는 발전기의 운전이 익숙치 못해 고장과 정전이 잦아 제등과 촉대들도 그대로 쓰여 졌으며 수리비에 연료비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인건비 등이 많이 지출됨으로써 언제부터인가 이 전등을 건달불(乾達火)이라고 하였다.

또, 전기기사인 맥케이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발전기의 냉각용수인 열탕이 향원정 연못에 환류하여 고기들이 때죽음을 당하자 이를 본 사람들이 우려하였다.
이 왕궁의 전등은 이와 같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 뒤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는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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