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쿠나(@kunastory)입니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역사에 대해 되짚어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해방전후의 전력사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화 할 목적으로 전쟁수행에 필요한 화학공업 등 중공업 시설을 서둘러 수력 및 지하자원이 풍부한 북부와 서부지역에 집중적으로 공업단지를 설치하고 대규모 수력발전소를 건설했다.
그 결과 1945년 8.15해방 당시의 전국의 발전 설비용량은 수력 1,586,153kw, 화력 136,500kw 합계 1,722,653kw이었다. 뿐만 아니라 해방 당시 북한에는 수풍발전소 7호기 등 공사 중이던 설비가 147만kw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해방과 함께 한반도는 포츠담선언으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어 38선으로 남한, 북한으로 분단되면서 냉전시대의 격전지가 되었다.
이 때 남한의 발전설비는 수력 62,240kw, 화력 136,500kw 합계 198,740kw로 전국설비의 11.5%에 불과했다. 그리고 연간 평균 발전력은 북한이 94만 2,284kw로 전국 발전량의 96%를 점하였고 남한은 4만 2,512kw로 4%에 불과했다.
따라서 한반도의 분단과 함께 남한은 북한으로부터 총 수요전력의 60~66%를 수전하여 왔으나 1948년 5월 14일 북한측의 일방적인 단전으로 남한전역은 극심한 전력난을 겪게 되었다.
남한에서는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후 화전을 긴급 보수하여 대처하는 한편 1948년에는 긴급전력대책으로 2월에 발전함 Jacona(20,000kw)를 부산에 그리고 5월에는 Electra호(6,900kw)를 인천에 도입했다.
한편 1949년 5월 5일 대통령 특별지시에 따라 발전소 운영의 일원화 조치가 시행되어 같은 해 6월 10일을 기해 당인리, 부산화전,보성강,영월수전(상공부)이 각각 조선전업에 이관되었다. 이 때의 발전설비는 231,144kw였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목포중유발전소와 Electra호가 전파되는 등, 발전설비의 20%가 파괴됨으로써 최악의 전력난을 맞이했으나 화천수전(54,000kw)이 남한으로 수복된 것은 6.25전쟁이 가져다 준 큰 수확이었다. 한편 1950년 1월부터 1953년 2월까지 미국에서 원조한 각각 2,500kw 용량 4척의 발전함이 당시의 전체 전력공급량의 약 3분의 1을 담당하였다.
또한 당시의 한미합동전력위원회는 100,000kw의 화력발전소 건설을 결정하고 1954년 FOA 원조자금 3천만달러와 원화 1억 3천만원으로 당인리 3호기(25,000kw), 마산화전(50,000kw), 삼척화전 1호기(25,000kw)를 착공, 1956년까지 모두 완성하였다.
또 이와 전후하여 UNKRA 원조자금으로 괴산수전(2,600kw)과 도서발전설비(1,200kw)가 건설되고 미국 원조자금에 의해 2차적으로 이루어진 화천수전의 전면적인 개·보수와 제 3호기(25,000kw)의 증설(1957년 11월 준공)로 1958년에는 연 평균 전력 172,000kw를 확보함으로써 잠정적이나마 전력난이 완화되었으나, 전원의 신규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않아 다시 전력난이 되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