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고나르는 스승에게 물려받은 밝고 빛나는 듯한 작품과 포동포동하고 귀여운 여성 묘사로 프랑스 로코코 회화의 중심적 존재가 되었다.
그만이 할 수 있었던 독특한 명암 대비와 화면 배치, 그리고 무엇보다 대담한 관능성,
이것 이야말로 프라고나르가 미술사에 남긴 위대한 족적이다.
얼핏보면 단지 웃으며 노는 장면으로만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그네>는 프라고나르의 작품군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나뭇가지에 달린 그네를 타고 한 여성이 놀고 있다.
밝은 빛을 오롯이 받고 있는 여자와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변 나무들의 짙은 녹색이 선명히 대비된다.
원래 이 작품을 주문받은 화가는 프라고나르가 아닌 가브리엘 두와양이라는 화가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와양은 제작을 사양했고 대신 주문자에게 프라고나르를 소개했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의뢰자인 남작은 애인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며
"사제가 미는 그네에 타고있는 모습을 그려줬으면 한다.'
그리고 그녀의 어여쁜 발이 보이는 부분에 나의 모습을 그려넣어 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만약 주문대로 그린 것이 맞다면 발밑에서 마치 치마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위치에 있는 남자는 의뢰자인 남작이고, 여성은 그 애인이다.
사제는 평범한 노인으로 변경되었다. 애인은 발로 샌들을 높이 던져 왼쪽에 있는 큐피드 상을 맞추려 한다.
이 큐피드 상은 에티엔느 모리스 팔코네가 대리석으로 조각한 바로 그 <위협하는 큐피트>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 1768 런던 왈라스 컬렉션
큐피드는 입에 손을 대고 정숙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모양새다.
즉, 여기 그려진 남녀 관계역시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되는 관계임을 암시한다.
모델이 남작과 그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도, 혹은 흘긋보아 평범치 않은 분위기 등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랑의 신의 이 행동 하나만으로 그림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사랑의 미술관 중에서>
♣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Jean-Honore Fragonard, 1732~1806 파리)
18세기 프랑스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이다.
프랑스 남부해안 도시 Grasse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0살경 가족들과 파리로 이주하였다.
그는 일찍이 Jean Simeon Chardin의 공방에서 예술가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14살 때 Boucher의 공방에 도제로 들어간다.
1752년 회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 Carle Van Loo에 의해 설립된 왕립학교의 학생이 되고 이후 프랑스 아카데미의 학생이 된다.
그의 후기 로코코 양식은 주목할 만한 유려함, 풍부함, 그리고 쾌락주의로 두드러진다.
앙시앵 레짐 마지막 시대의 다작의 작가들 중 한명으로서 프라고나르는 55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들 중 5점만이 날짜가 있는 육체 관계의 분위기와 숨겨진 에로티시즘을 전달하는 '풍속화' 회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