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 무서운 세상 1.합리적이지 않은 우리라는 글을 급하게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역시 설명이 미흡합니다. 여러번 생각하고 글을 썼던 주제는 제 안에 보편적인 생각으로 자리 잡아버려 논리적 비약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더 변명하자면 며칠간 글이 흡족하게 나오지 않아 컨디션도 좋지 않았으며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는 말씀을 드리며 양해를 부탁합니다. 이 글 하나로 바로잡을 수 있는건 아니지만 최소한 자유와 평등, 인간의 번영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다시 글을 씁니다.
종의 번성에 대한 지표로 주로 이용되는 것이 개체수, 해당 종이 주서식지에 행사하는 생태적 지위, 서식하고 있는 구역의 넓이입니다. 좁은 구역임에도 독보적인 생태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에서 번영한 ~'처럼 한정적인 수식어를 붙입니다. 개체수는 종에 따라 잉태기간, 양육방법, 자립에 필요한 시간 등이 모두 다르기에 종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여야 하며, 따라서 개체수는 다른 종과의 비교를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종 내에서 번성과 쇠락을 알아보는 지표로 이용됩니다.
같은 지표를 통해 인간을 분석하면 인간은 계속해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개체수가 늘어나고, 인간의 생태적 지위는 압도적입니다. 인간에게 가치 있으면서 사육이 쉬운 종은 개체수가 늘어나고, 인간에게 가치 있지만 사육이 힘든 종은 빠르게 감소합니다. 그저 사냥하기 좋아서 멸종한 종들도 있습니다. 지역 내에서 독보적인 생태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종도 인간에 의해 쉽게 무너집니다. 지역 내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종이 인간에 의해 번성하기도 합니다. 자연적으로 번영하고 있던 종이 인간에 의해 새로운 품종이 되기도 합니다. 산업활동의 부산물에 의해 멸종하는 종도 있으며 이에 적응하여 진화하는 종도 있습니다. 인간이 지구 생태에 끼치는 영향 또한 끝이 없으며 이 압도적인 영향력이 인간의 생태적 지위를 보여줍니다. 서식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살기 좋은'으로 요약되는 지역과 산업이 발달한 지역에 인구가 밀집되었지만 인간은 기술의 발달로 많은 극한 환경을 이겨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다른 존재들과 분리하고 싶어합니다.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는 다른 번영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생물적 본성을 이겨낸 증거가 있어야합니다. 자연에서도 사회를 형성하는 종들은 노약자를 배려하지만, 인간은 특별히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숭고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충동에 따라 '삶의 질'이라는 지표를 들이밉니다. 이는 측정하기 어려우며 모호하지만, 주로 개인이 스스로의 삶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뜻합니다. 언제 야행성 포식자들에게 물려죽을 지 모르며 숙달된 사냥꾼도 사냥 도중 얼마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과거에 비하면, 고기 반찬을 비교적 목숨의 위험 없이 취할 수 있는 현재가 삶의 질이 높습니다. 성공을 위해 혈통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며 교육도 출신성분에 따라 다르게 주어져 타고난 재능과 노력과는 상관 없이 태생이 삶을 결정했던 과거와 다르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재능과 노력으로 자수성가 할 수 있는 지금이 삶의 질이 높습니다.
이러한 기반에서 인간사회가 높게 평가하는 가치가 자유와 평등입니다. 이들은 종종 충돌하는듯 보이지만 자유라는 가치가 개인의 자유가 아닌 인류 보편적인 자유를 지칭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자유와 평등은 일치하는 가치라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타인에게 침해 받지 않는 자율적인 삶에 대한 권리가 자유이며 이것이 인류 보편적 가치라 한다면 평등은 수반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사회는 이에 따라 약자를 배려합니다. 약자가 자연에서처럼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도태되지 않도록 돕습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 또한 타인에 의한 영향이며 자율적인 삶이 아니지만 사회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에 의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더욱 중요시하였습니다. 스스로 약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선택하지 않은 삶에 의해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걸 일정부분 허락합니다. 이를 위해 약자가 아닌 이들의 자유도 침해합니다. 세금을 부과하고 제도를 형성합니다. 자유를 침해하지만 공권력을 형성합니다. 개인이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 온전히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직접민주주의를 하면 좋겠지만 사회적 비용으로 인한 자유의 침해를 우려해 현실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택합니다. 아마 기반이 확보되었음에도 계속해서 대의민주주의를 택한다면 선지자들을 필두로 대중은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할 것입니다. 사회는 공공선으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글을 마칠 수 있으면 굉장히 기쁘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이전 글에서 자유라는 개념의 허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의도를 선한 것에서 악한 것으로 분류한다면 부모의 양육을 보편적으로 가장 선한 것에 두고 가장 악한 것에 세뇌를 둘 수 있습니다. 자식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양육조차도 자식에게 그릇된 관념을 심을 수 있으며, 올바른 관념을 제공한다 하여도 이것이 자식이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자유란 더욱 덧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평등에 대해서는 기존에 쓴 글들에 있는 내용을 참고하시는게 좋을 듯 하여 링크합니다. 스팀잇에도 쓴 글이 슬슬 쌓여가니 기존 글들을 통합하며 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은근한 재미가 있네요.
철학이야기 #3. 모든 가치의 수장, 평등
철학이야기 #4. 평등과 경쟁의 위태로운 공존
철학이야기 #5. 공평함의 난제
본론으로 돌아가서, 결국 전제부터가 틀린 것입니다. 자유가 허상이라면 평등 또한 힘을 잃고, 인간이라는 종의 번성을 생물적 번영과 분리하고 싶지만 우리는 자연의 산물입니다. 자유가 환상이라면, 뉴로 마케팅과 같은 것들이 자유를 해친다는 입장이 모순적으로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레 상호작용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건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인간의 특성을 정확하게 알고 이를 이용하는건 착취 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며칠간 만족스러운 쓰지 못 했다는게 몇시간 전인데 이렇게 또 글을 올리게 되니 조금 부끄럽습니다. 어느덧 슬슬 또 배가 고파져 뇌가 급격히 멈추어 갑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아, 사육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절대로 중단하는 것은 아니니, 믿고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