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은 날카롭다. 인간이 스스로 믿는 것을 부정한다. 뚜렷하고 합리적인 주체에 대한 신뢰를 파괴한다.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드러냄이란 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 추악하다면, 개인의 부정적인 면들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기도 한다. 뚜렷하고 합리적인 주체가 아닌 개인은 추악한 본성에 휘둘릴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비관론자들이 아니며, 추악한 인간에게는 살 가치가 없다고 체념하진 않았다. 우리는 본성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 이를 믿는 학자 중 하나가 "여러분들은 나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지 말라."는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다.
로버트 트리버스는 '우리는 왜 자기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The Folly of Fools)'에서 담담하게 인간을 드러낸다. 동물에게서 엿볼 수 있는 기만의 형태와 그 기만이 어떻게 생존에 도움을 주는가에서 인간에게도 기만이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결론으로 향하고, 그 중에서도 자기기만을 강조한다. 남을 속이는건 자신의 이기적인 생존에 도움을 주기 마련이고, 그리고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어야 한다. 자기합리화, 인지부조화 등 익히 알려진 심리적 프로세스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자기기만을 통해 양심의 가책이라는 비용 없이 남을 속일 수 있다. 남에게 비교적 피해를 끼치지 않는 개인의 삶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낙관적인 삶의 태도는 자기기만의 한 형태다. 낙관적인 것도 비관적인 것만큼 한쪽으로 치우친 태도다. 따라서 낙관적인 태도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게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로 왜곡하는 자기기만이다. 그리고 낙관적인 태도는 면역력, 수행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글을 쓰는 우리에게 더욱 친숙할 정보도 있다. 털어놓는 글쓰기에 대한 연구이다. 한쪽은 정신적 외상과 무관한 하루 일과를 쓰도록 하고, 다른 한쪽은 정신적 외상에 대해 매일 글을 쓰도록 했다. 나흘동안의 글쓰기를 마치고 정신적 외상에 대해 서술한 피험자들은 글쓰기 이전보다 개선된 상태였다. 그리고 6주 후에도 그들의 면역계는 좋은 상태이며 기분조차도 일상에 대해 글을 쓴 피험자들보다 좋았다. 반대로 정신적 외상을 숨기고 살아가는 성인들은암, 고혈압, 독감, 두통 등의 질병을 더 많이 앓는다. 여행길에서 낯선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게 되는 이유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우울한 분들을 위한 팁도 있다. "행복하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의 여운이 남아 "슬프다."고 쓰는 것보다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실직에 대해 글을 쓰면 재고용 기회가 늘어난다. 실직에 대해 글을 쓴 사람 중 53%는 6개월 내로 새 직장을 구했지만, 글을 쓰지 않은 사람은 18%에 불과했다.
항공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다 대한항공의 사례도 지목했다. 1988~1998년 동안 대한항공의 사망 사고 비율은 미국 항공사보다 약 17배 높았으며 델타와 에어프랑스 항공사는 대한항공과의 협력 관계를 중단했다. 미군은 부대원에게 대한항공 이용을 금지했으며, 캐나다는 착륙권을 내주지 않을 것을 고려했다. 문제를 살피기 위해 파견된 자문단은 한국어에 내제된 위계적인 편향이 부조종사의 독립성을 크게 해쳐, 부조종사가 지적한 문제점이 제대로 받아들여졌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도 많았음에도 사소한 실수에도 조종사가 부조종사를 비난하는 문화가 정보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고 보고 영어 사용을 권장했다. 그 이후 대한항공은 크게 개선되었다.
훨씬 큰 규모로 일어나는 자기기만도 있다. 거짓 역사 서사이다. 미국은 인디언들을 몰살시켰고 멕시코를 공격했다. 중앙아메리카, 베트남, 캄보디아, 동티모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대학살을 지원하기도 했다. 작가는 이라크의 주요 수출품이 아보카도와 토마토였다면 미국은 전쟁을 일으켰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서 벌인 만행을 왜곡한다.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여 부정적인 역사를 감추는 행태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버트 트리버스가 이야기하는 자기기만은 끝이 없다. 철저한 실증을 토대로 날카롭게 지목하는 자기기만은 남녀관계, 가족관계, 일상생활에 걸쳐 폭 넓게 자리잡고 있다. 날카롭다는 어휘에서 우리는 차갑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철저한 객관성은 차갑지 않다. 오히려 인류가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더 나은 존재가 되길 원하는 따뜻함도 가진게 이 책이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표현에서 나타나는 심상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이름의 머릿글자가 C,D인 학생은 A,B인 학생에 비해 시험결과가 좋지 않다. 수행능력이 나쁘고, 지능이 낮은게 아니라 자신의 머릿글자를 선호하는 성향이 C,D라는 성적에 대한 거부감을 줄인다. 각각의 연구를 모아 자기기만이라는 이론을 형성한 로버트 트리버스, 그의 통찰력을 느끼고 자신의 자기기만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읽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