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가 디지털이 되었으나 아날로그 카드가 주는 원초적인 손맛, 수집한 카드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이라는 아날로그적 가치에 집착하며 매직 더 개더링 기반 TCG들은 쇠퇴했다. TCG는 진입부터 어렵다. 수많은 카드들을 외우고 기본적인 아키타입을 숙지해야한다. 거기다가 돈도 많이 든다. 한 게임에서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는 것도 굉장히 어렵다. Dota-like 게임들은 도타를 즐겼던 사람들이라면 모두 쉽게 적응할 수 있지만 TCG에서는 기본적인 규칙부터가 크게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장르부터가 불친절하다. 디지털에서도 여전했다. "본게임은 아날로그고 디지털은 맛보기"라 말하는 것 같은 어설픈 게임들은 디지털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 하고 있었다. 보드게임 보급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카드게임의 시대는 저물었다.
몇번의 시도는 있었으나 눈에 띄는 성과 없이 매니악한 장르라는 평가를 넘지 못 하고 있던 TCG의 흐름은 쉽게도 바뀌었다. 워크래프트 프랜차이즈라는 거대한 후광을 등에 엎고 나타난 하스스톤은 크게 성공했다. '놀랍도록 쉽고 재밌는 게임'이라는 슬로건에 맞추어 하스스톤은 정말로 놀랍도록 쉬웠다. 복잡한 규칙도 능력도 없다. 1분간 카드 설명을 읽고도 부가적인 설명을 인터넷에서 찾아야 했던 기존의 복잡한 게임들과 달리 5초 이상 읽을 필요 없는 카드들. 거기다가 압도적인 편의성까지 갖춘 하스스톤은 블리자드가 구축한 Battle.net 2.0 플랫폼을 성공으로 이끌며 디지털 카드게임의 공식을 만들었다. 필요 없는 카드는 추출하고 필요한 카드는 제작한다. 더 이상 프리미엄도, 번거로운 개인거래도, 절판된 카드도 없다. 자신 있는 플레이어는 드래프트를 통해 쉽게 카드를 모을 수 있다. 그 공식에 따라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압도적인 성능으로 고가에 거래되었던 정신조작자 제이스, 더 이상 개인거래는 없다!
아류작들은 하나 같이 하스스톤의 단점으로 꼽히는 무작위성, 너무 단순하여 결여된 전략성을 보완하여 출시되었다. 하스스톤이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어 이제 조금 더 복잡한 게임들도 먹힐거란 계산이었을까? 혹은 하스스톤의 지나친 단순함에 질린 매니아층을 포섭하려는 시도였을까? 제작비도 가볍기에 소규모 스튜디오들까지 참전하며 오랜 세월 끝에 카드게임 열풍이 다시 찾아왔다.
엘더스크롤 프랜차이즈의 베데스다는 블리자드의 전략을 차용하여 Bethesda.net 런처를 만들고 엘더스크롤: 레전드라는 게임을 출시했으며 위쳐의 CD프로젝트레드도 위쳐3에서 미니게임으로 선보였던 궨트를 들고 나왔다. 워크래프트 프랜차이즈를 등에 엎고 화려하게 등장한 하스스톤처럼 이들도 매니아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신들의 프랜차이즈를 활용했다. 한국에서는 마비노기: 듀얼이 나왔고 일본에서도 기존의 프랜차이즈를 활용한 섀도우버스가 출시되기도 했다. 이들은 제각각 매직 더 개더링에서 하스스톤으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상실된 무게감을 살리는 방향, 하스스톤의 가벼움까지도 계승하는 방향, 혹은 제3의 길로 갈리었다.
개성은 압도적이었던 궨트, 개성은...
하스스톤에서 상실된 유색마나, 대지의 개념에 이동을 합쳐 독창적인 페어리아
이 외에도 많은 게임들이 있으며 게임들을 하나하나 다 소개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중요한건, 하스스톤의 단점을 보완하겠다고 나온 이 게임들이 모조리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장르가 무너진 것도 아니다. 금방 쇠퇴할 것이라 여겨졌던 하스스톤은 유저수, 매출을 갱신하고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에 도전한 수많은 게임들이, 결국 MMORPG가 쇠퇴할 때까지도 와우를 넘지 못 한 것처럼 하스스톤을 넘보던 수많은 게임들도 무너졌다. 이들이 무너진 이유는 다양하다. 극도로 무거운 카드게임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은 매직 더 개더링에 남아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도 크나큰 실책 중 하나이며, 하스스톤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에 실패한 것도 문제였다. 하스스톤 유저들 사이에서 무작위성, 전략성의 부재를 뒤따르는 불만은 느린 업데이트 주기였다. 밸런스도 엉망인데 새로운 카드도 자주 나오지 않아 디지털의 장점을 살리지 못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긴 커녕 더욱 심각한 상태다.
새로운 카드게임이 나온다는 소식도 뜸해진 2017년 8월, 밸브는 자사가 주최하는 가장 큰 행사, The International 2017에서 아티팩트를 소개했다. 현장에는 야유가 가득했다. 숫자 3이 없는 회사라는 악명을 지닌 밸브가 하프라이프3, 포탈3을 기다리는 팬들의 염원을 또 다시 좌절시키며 발표한 게임이 카드게임이었으니!
좌절과 분노 속에 이름을 알린 아티팩트는 그 이름 외에는 아직 알려진게 적다. 하지만 간단한 소개에서도 드러나는 개성이 돋보인다. 프랜차이즈만 빌려온 다른 게임들과 다르게 아티팩트는 도타 자체를 카드게임으로 옮겼다고 한다. 플레이어는 5명의 영웅을 가지고 아이템 등으로 이를 강화할 수 있다. 5개월이 지났지만 밸브는 아직도 추가적인 발표 없이 팬들을 고문하고 있다. 과연 아티팩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하스스톤을 넘을 수 있을까?
내가 쓰고도 이 글을 누가 읽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약속한게 있어서 간간히 게임 관련 글을 올리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