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의 발행은 무상증자와 유사합니다. 자본금의 변동 없이 스팀을 발행합니다. 스팀이 새로 발행되었으니 기존 보유자가 가지고 있는 스팀의 가치는 당연히 희석됩니다. 그 희석된 분량 중 일부를 보유자에게 보상합니다. 단, 증인보상에 일정량이 묶여있습니다. 따라서 스티미언들이 보유하고 있는 스팀 가치의 합은 계속되서 희석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스티미언들의 스팀 가치를 희석시켜가면서까지 증인보상이 필요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증인은 시스템에 기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증인들이 없다면 시스템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탈중앙화를 철학으로 둔 암호화폐인 스팀에서 다른 현실화폐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들처럼 고용주가 증인에게 임금을 지불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시스템에 기여하는 증인은, 시스템에 의해 보상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의 일부를 증인에게 지급하는 방식을 유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스템 자체가 모든 스티미언이 스팀의 시장가치의 변동 없이는 계속해서 손해를 보아야하는 구조임에도 누군가는 보상을 얻는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잃는 이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잃는 이란 보팅파워를 행사하지 않는 이, 행사하더라도 타인에게 많이 행사하는 이입니다. 증인보상을 제외하고 인플레이션을 통해 새롭게 발행된 스팀은 보유자에게 지급되는 이자와 보상풀로 나뉘는데 내가 행하지 않은 보팅파워는 그저 소멸되는게 아니라 다른 모든 스티미언에게 나누어주는 것과 유사합니다. 자신이 보팅파워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스팀파워가 리워드풀에 미치는 영향이 커집니다.
무분별한 셀프보팅이 위험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분별한 셀프보팅이란 단지 내 몫을 가져가는게 아니라 보팅파워를 행사하지 않는 누군가가 보팅파워를 행사했다면 가져갔을 보상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진해서 손해를 보는 이는 왜 손해를 보면서까지 스팀을 보유하고 있거나, 타인에게 보팅하고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Patreon이나 iTunes에서 컨텐츠를 소비하는 이들과 같습니다. 자신의 재화를 컨텐츠 생산자에게 지불하는 개념입니다. Patreon이나 iTunes처럼 컨텐츠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재화를 지불하지 않는 YouTube는 광고주가 컨텐츠 소비자의 지불금을 대납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고주가 대납한 재화는 마찬가지로 사측이 일정량을 제하고 컨텐츠 생산자에게 전달합니다.
스팀에서는 두가지 형태가 결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팀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보팅파워를 행사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컨텐츠 소비에 해당하는 돈을 대납하는 광고주, 스팀을 보유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남에게 보팅파워를 행사하는 이는 컨텐츠 소비자입니다. 하지만 이 현실화폐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들과 스팀에는 거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재화를 지불하고 이를 컨텐츠 생산자에게 지불하는 기존의 플랫폼과 다르게 스팀은 무상증자 시에 마땅히 받아야 할 주식배당의 일정량을 제하면서 컨텐츠 생산자에게 지불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환각을 주는 것은 기존의 플랫폼에서는 현실의 화폐를 기반으로 정량의 가격을 정해두었기에 자신의 소비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반면 스팀은 인플레이션율을 알고 그를 토대로 자신이 보유한 스팀이 희석되는 양을 계산한 후에 스팀의 시장가치변동을 다시 계산하여야 소비한 재화의 양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벼운 글'에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건 여기서 기인한 환상입니다. 과연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분들은 인스타그램에 유료구독기능을 둔다면 '가벼운 글'을 쓰는 친구의 글을 돈을 내고 구독할까요?
하지만 동시에, 스팀은 모든 컨텐츠가 완전히 공개되어있습니다. Patreon, iTunes 등은 가격을 지불한 이들에게만 컨텐츠가 제공되지만 스팀은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더욱 어렵습니다. 가격의 지불을 컨텐츠 소비자에게 전적으로 맡겨놓았습니다. 비유하자면 커피값을 원하는만큼 내는데 1원을 낸 사람도, 100만원을 낸 사람도, 한푼도 지불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똑같은 커피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분명 모든 스티미언이 자신이 투자한 것 이상을 가지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스팀의 가치상승이 필수적입니다. 계속해서 희석되는 보유량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팀이 올라야만 하는 것이지요. 스팀의 가치상승이 어떠한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인가에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있지만 거품 없이 스팀의 시장가치가 상승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스팀의 용도가 늘어나는게 당연합니다. 당장 스팀에서는 가장 직관적으로 와닿는게 컨텐츠 소비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커피값을 내지 않은 사람도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는 환경이기에 단지 소비자의 양심에, 컨텐츠 생산자에게 보상을 지불하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시스템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팀에 있는 문제는, 스팀의 고유한 방식을 이해한 후에야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스팀이라는 플랫폼이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지탱하는 증인 뿐 아니라 일반 스티미언들의 기여도 필수적입니다. 최대한 스팸을 배제하고, 보상 받을 가치가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내고 그러한 컨텐츠에 보상을 하는 모든 스티미언들의 노력 하에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팀은 거대한 죄수의 딜레마를 제공합니다. 스팀이라는 플랫폼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힘쓰는건 모든 스티미언에게 도움이 됩니다. 스패머의 처단은 모두에게 보상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스패머가 갖는 극소량의 보상만으로도 리워드풀을 좀먹는 것이기에, 스패머에게 다운보팅하는 것은 스패머가 받는 보상을 리워드풀로 돌려보내는 것이고 이는 활동하는 모든 스티미언에게 혜택을 줍니다. 하지만 이런 이타적인 행동은 특별한 보상을 받지 않습니다.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다행히도 스팸 처단에 대한 열망이 크기에 열성적인 안티-스패머들이 자신의 활동을 보고할 때마다 이를 높게 사고 보상합니다. 하지만 스팸과 같이 확실한 예를 제외하고도 작은 죄수의 딜레마는 끊이지 않습니다. 가령 주 1회 연재를 위해 1주일 내내 메달리는 것과 퀄리티가 주 1회 연재의 10%도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매일 매일 연재하는 전략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지는 자명합니다. 많은 한국 커뮤니티 스티미언들이 1일1포스트를 하려는 이유도 더 많이 준비하고, 더 긴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도 자주 노출되는게 유리함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소비가 직관적이지 않고, 이기적인 행동이 이타적인 행동에 비해 압도적인 보상을 얻기에 나타납니다. 컨텐츠에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를 무책임하게 컨텐츠 소비자에게 던져놓았기에 생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써드파티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써드파티 개발자들이 더욱 직관적인 소비가 가능하도록 유도하거나, 새로운 형태로 스팀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지요. 가령 일정량의 스팀을 지불하고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1일1포스트에 집착하지 않고도 고급 컨텐츠를 만들어 낼 동기가 생깁니다. 웹툰 작가를 한번 생각해볼까요? 당장 지난 주에 저는 Saga를 사서 읽느라고 5만원을 썼습니다. 웹툰 단행본을 사서 읽기도 했습니다. 음반도, 책도, 게임도 삽니다. 하지만 내가 가치있게 여기는 컨텐츠 생산자가 스팀에 들어온다고 내가 그 가격만큼의 보팅을 해줄 수 있을정도로 스팀을 구매할 여력은 없습니다. 분명 5만원을 내고서라도 즐기고 싶음에도, 5만원을 낼만큼의 스팀을 보유하는건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컨텐츠 창작자는 창작물의 가치만큼의 보상을 얻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써드파티를 통해 정량을 직접 지불할 수 있는 서비스가 탄생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써드파티를 통해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탈중앙화에 반합니다. 가령 해당 서비스를 통해서는 분명 일러스트, 소설, 만화 등 다양한 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어야함에도 개발자가 가치있게 여기는, 혹은 서비스 공급자의 수익에 도움이 되는 컨텐츠의 노출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왜곡될 수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탈중앙화에 반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SMT에 주목합니다. 개발자들이 더욱 자유롭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특정 개발자에게 메달리지 않고도 더 높은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 개발자들이 뛰어듭니다. 예를 들어 간단히 독점적 컨텐츠 열람권을 직접적으로 판매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합시다. 이것만으로도 실질적인 스팀의 사용처가 늘어나고 컨텐츠가 높은 가치를 얻음에 따라 해당 서비스 제공에 이용되는 토큰의 가치, 스팀의 가치는 상승할 것입니다.
SMT를 통해서는 스팀홀더에게 큰 이윤의 기회를 주는 서비스도 가능합니다. 가령 컨텐츠 생산자의 지분을 판매하는 서비스입니다. 컨텐츠 생산자 A가 있다고 할 때 컨텐츠 생산자 A가 얻는 보상의 일정양을 투자자에게 나누어주는 방식입니다. A의 지분을 구매하는 형태이지요. 이 경우 저평가 받는 컨텐츠 생산자를 발굴한다면 거대한 보상을 얻을 것입니다. 우선은 배당금의 형태로 A의 지분을 가진 것만으로도 끊임 없이 보상을 얻을 것이고, A의 가치가 올라감에 따라 A의 지분의 가치도 크게 오릅니다.
말 그대로 한계가 없는 다양한 컨텐츠 생산, 소비의 방식이 출현할 기회입니다. 아쉽게도 개발능력이 없어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지만, 능력과 아이디어가 있는 개발자들이 많이 뛰어들어서 스팀의 가치를 늘릴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