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치료를 선택할 자유를 지닙니다. 어떤 병원에서 어떤 의사를 지목하고 어떤 치료를 받을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받고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적 문제로 이 문제에 대해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지는 않지만, 병원, 의사, 치료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치료를 받지 않을 자유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들이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비윤리적이며 자신의 생명에 무책임한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는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안락사, 존엄사, 모르핀 투여 등 다양한 쟁점이 여기에 묶여있지요.
흔히 최소한의 도덕을 법이라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법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존재합니다. 도덕이 무너지면 사회질서도 위태로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둘은 절대로 불가분의 관계가 아닙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완치의 가능성이 없는 말기암 환자가 생명유지장치에 의해 억지로 생을 연장하여 고통 받고, 그걸 지켜보는 가족의 삶도 피폐해짐을 생각하면 환자의 의지에 따라 죽음을 택할 수 있어야합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를 허가하기엔 다양한 제약이 따릅니다.
병마에 시달리면 환자의 정신도 흐려집니다. 우울증 환자가 '죽고 싶다'고 말한다고 안락사를 시키는게 말도 안 되는 행위이듯, 병마에 시달려 맑은 정신을 유지하지 못 하는 환자의 선택을 진정 환자의 선택이라 볼 수 있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 배제하기 위해 사전에 결정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선택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환자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하던 생각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버티고 버텨서 살아남겠다'라 할 지라도 의식을 잃은 환자는 이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사전에 '난 장치를 주렁주렁 메달고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이 죄도 아니고, 모두가 할 수 있는 생각인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목숨을 앗아간다면 너무나도 가혹한 일입니다.
의학의 발전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 환자의 병세를 크게 호전시킬 획기적인 약품, 치료법이 개발될 지 모릅니다. 이에 대해 충분히 주의를 시킨 후에 죽음을 결정했다 할지라도, 가능성으로서와 실제로서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언의 집행을 앞당기기 위해 가족들이 이를 악용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의식을 잃기 이전에 미리 가족들에게 유언과는 달리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하더라도 가족들이 이를 숨길 수가 있습니다.
목숨을 끊는 문제 외에도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 약물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이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환자, 특히 시한부와 그 가족들은 절박한 심정에 그 어떤 부작용이 있을 치료법과 약물에도 동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환자들과 가족을 대상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제약회사들을 경계함이기도 합니다. 도덕적으로 볼 때는 100% 죽음을 맞이할 환자에게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검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치료법, 약물을 제공하는 것이 옳습니다. 물론 환자와 가족들이 원한다면요.
본격적으로 유전자 복제 문제에 들어가기 이전에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생식의 자유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었죠. 그 연장선에서 어째서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법률이 다시 해칠 수 있는가, 도덕과 법률이 어떻게 대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시면 재밌을 것 같아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