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걷다보면, 쓰레기가 쌓인 곳이 있다. 주로 가로등 아래, 'CCTV~'로 시작하는 경고문까지 있지만 아무 소용 없다. 집 근처에 공터가 있다. 그 공터 한구석에도 사람들은 쓰레기를 모은다. 공터 주인 또한 욕설이 포함된 강력한 경고문을 붙여놓았지만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 했다.
사람들 눈을 피해서, 다양한 경고들은 억지로 무시하며 쓰레기를 버리려는 노력 대신 부탁과 협박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하기도 한다. 바로 카페를 습격하는 것이다. 카페 사장들은 알고 있다. 악성 손님이라 할 지라도, 그 손님이 온라인 공간에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자신들의 카페는 한순간에 망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 어떤 손님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요구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그 중 하나가 집에서 가져온 쓰레기를 버려달라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노골적인 일이 일어난다. 종량제 봉투를 쓰지 않고 일반 쓰레기를 배출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량제 봉투가 아닌 비닐 봉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종량제 봉투를 쓰는 사람도 흔들릴 것이다. 그래서일까? 종량제 봉투보다 일반 비닐 봉투가 많은 단지들도 있다. 생각나는 키워드, 깨진 유리창 효과.
나는 그들의 경제적 상황을 알지 못 한다. 종량제 봉투의 가격이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가? 내가 살며 느낀건, 종량제 봉투의 가격에 의해 생계가 위협 받을 삶을 산다면 그렇게 많은 종량제 봉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부족한건 종량제 봉투를 살 돈은 아닌가보다. 하지만 내가 개인들의 삶을 얼마나 알겠는가. 또 오만하게 그들을 함부로 재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을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부르진 않겠다. 그들에게도 사정이 있겠지. 단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내 생각을 배출할 때도 규격이 있다. 내가 정해놓은 규격에 따라서만 생각을 배출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나는 '양심이 없는' 사람일까, 사정이 있는 사람일까? 법으로 정해진 규격이 아니라, 내가 정한 규격이니 어겨도 되는 것일까? 스스로 정한 규격을 어기는 사람이, 자신이 정하지도 않은 법을 어기는 사람보다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그래도 죄의식은 없다. 내가 정한 규격이니, 무너뜨리는 것도 내 마음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