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글 상담사의 윤리와 일반 인간관계, 연애의 윤리라는 글을 출판을 목적으로 썼다고 하자. 아마 본문 자체로 책 한권을 구성하기 보다는 "일반인간관계윤리"에 들어갈 한장으로 쓰였을 것이다.
혹자는 분량이 모자라다고 생각할 것이다. 분명히 본문의 분량은 짧다. 하지만 늘리는건 아주 간단한 일이다. 첫문단에서는 내담자가 상담사에게 갖는 애착, 그리고 그 애착이 충족되지 않아 일어나는 역전이에 대해 사례들을 들어가며 다룰 수 있었다. 상담사가 적절하게 내담자의 애착을 다루는 것에 실패했던 사례, 상담사가 내담자의 애착을 통해 이익을 취한 사례들을 나열할 수 있었다. 첫문단을 잡아 늘렸다면 본문 전체보다도 훨씬 길어질 수 있었다.
나머지 문단들도 마찬가지다. Donald G. Dutton의 'Some Evidence for Heightened Sexual Attraction Under Conditions of High Anxiety'를 인용하여 흔들다리 효과를 부연설명한다면 아주 글이 길어졌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둔 창작물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흔하다며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할 수도 있었다. 높은 긴장 상태에서 시작되는 관계는 무협, 판타지, 로맨스, 스릴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나쁜 남자 신드롬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에 바탕을 둔 창작물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 스톡홀름 신드롬 또한 마찬가지다.
아마 출판을 목적으로 썼다면, 이 모든걸 인용하며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했을 것이다. 이 자료들을 제시하고, 수용하는 활동은 저자에게나 독자에게나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저자와 독자들은 왜 이 시간들을 희생하고 있는가?
첫째로 객관적으로 검증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신뢰도를 형성하기 위함이며, 둘째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글에서는 독자의 지식 수준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가정해야 한다. 따라서 독자가 알고 있을 내용이라 가정하지 않고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 외에도 몇가지 이유가 더 있으나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자료들을 이용한 결과물은 항상 객관적인가? 객관적인 자료들을 해석하고 엮어서 하나의 논리를 구성하는 과정에는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저자도 모르게 일어나기도, 알고도 독자들을 기만하기 위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독자의 지식 수준이 부족하다면 자료들을 아무리 자세히 밝혀도 자세한 자료가 오히려 독자들의 눈을 가리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작가의 기만에 속을 것이며, 독자의 지식 수준이 충분하다면 논리를 구성하는 과정에 사용한 자료들에 대해 자세히 밝히지 않더라도 편향적으로 흘러간 내용을 교정하며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분명 논리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이는 인지편향 중 하나다."라고 표현하고 넘어갈 수 있는 내용을 매번 인지편향에 대해 자료를 제시하고 부연설명을 하는게 얼마나 시간낭비인가?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수십번은 이미 읽은 내용에 대해 다시 읽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온전한 알맹이만 받아들이고 소화하여 내것으로 만드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은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찾는 시간까지 요구된다. 그리고 그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
문득 미래의 정보교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먼 미래는 예측하는게 무의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니, 가까운 미래만 놓고 보겠다. 지금도 한 사람이 모든걸 아는건 불가능하다. 가까운 분야의 전문가들끼리도 서로 앎이 다르기에 충돌이 생기는 일도 잦다. 하물며 일반 대중들은 어떻겠는가? 상술한 것처럼, 충분한 자료를 제시하더라도 일반 대중들에게는 이를 적절하게 해석하고 그 자료들을 토대로 쌓은 논리의 논리성을 검증하는게 쉽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보의 수용을 돕는 다양한 도구들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의 리더들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기 위해 이러한 도구의 발달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우선 디지털의 특징을 살려 저자와 독자를 위한 도구가 발달할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더 이상 글은 선형적으로 구성된게 아닐 것이며 원하는 내용을 자유롭게 건너뛸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논리를 뒷받침하기에 적절한 자료들을 쉽게 선택하여 제시할 수 있으며, 독자들은 저자가 제시한 자료 중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을 쉽게 건너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원한다면 저자가 제시하지 않은 부가적인 자료들까지도 찾을 수 있도록 보조할 것이다. 자료들을 깊게 검토하지 않고도 독자들이 자료의 신뢰도를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는 도구들도 탄생할 것이다. 이 도구를 활용하여 독자들은 저자가 혹 편향된 자료들로 논리를 쌓아올리진 않았는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저자와 독자의 소통을 원할하게 할 도구들의 가능성은 끝이 없다.
디지털 시대가 오며 저자와 독자 간의 거리, 독자와 다른 독자 간의 거리가 좁혀졌다는 말을 들은게 이미 오랜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알맹이를 소화한 후 생각을 나누기보다는 껍질을 벗기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적절한 도구를 얻는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아직 적절한 도구를 얻지는 못 했지만 나는 여러분들이 껍질을 벗기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사유하는데 시간을 쓰길 원한다. 그래서 끝 없는 자료들로 여러분들을 억누르기보다는 짧은 통찰만을 나누고 싶다. 혹자는 이런 나를 학문을 무시한다며 무례하다 여길지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학자가 아니라, 한량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