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기 전이 가장 춥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쏟아지던 비가 어느새 눈이 되어 내린다.
인간 카나리아들에게는 계절의 변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죽음의 계절을 지나, 역동하는 생명의 계절이어야 할 터인 봄이, 인간 카나리아들에게는 가장 죽음에 가까운 계절이다. 인간 카나리아들에게 봄의 나릇함이란, 항히스타민제가 주는 부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글을 시작해서 죽음에 대한 농담을 한참 늘어놓았다. 내 친구들은 나의 죽음을 가지고 농담을 많이 한다. 그러다 문득, 독자분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실 것 같았다. 죽음을 가지고 농담을 한다는 사실이 불편한 분도 계실 것이다. 그래서 지워버렸다.
내 문체를 유지하면서 밝은 분위기를 전달하기는 어렵다. 특히 소재가 소재일 때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문체를 바꿔야 한다. 필요에 따라 목소리를, 억양을, 톤을 조절하듯 문체를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릴 때는, 소설 속 화자의 목소리를 빌릴 수 있겠지만, 화자가 나인 글에서는 나의 문체로 전달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가식적인, 꾸며낸 글이 된다. 조금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시종일관 유쾌한 상태이며, 내가 심각해지는건 아주 아주 아주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 문체는 일반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항상 유쾌한 사람은 문체에서까지 밝음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던 것 뿐인데.
내가 오늘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따지면, 조금은 이 글이 밝아보일까? 이틀전에 몇분과 앞으로 성실하게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글이다. 다 지워버려서 남은게 요만한 글이라는게 아쉽긴 하지만, 평소 같으면 그냥 다 지우고 집으로 돌아갔을텐데 약속을 지키고자 무어라도 남기려고 한다. 아무 메세지 없이 일기만 달랑 남기는건 내 성미에 맞지 않지만 아무렴 어때. 대문에도 뻘글이라고 미리 써두지 않았는가. 8시간 끝에 남은건 이것 뿐이지만 아무렴 어때. 나는 이 여유를 사랑한다. 아! 다 쓴 글을 지운게 아니라, 8시간동안 창 밖에 내리는 눈을 정신 없이 바라보느라 글을 안 쓴걸로 해야겠다. 그럼 성실하게 글을 쓴다는 약속을 어긴게 되나? 약속을 어겨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