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세뇌에 가까운 목적을 지닌 홍보물들을 볼 수 있다. 홍보의 대상은 사이비 종교, 사이비 이론, 사이비 사상에 이르며 최근 한국에서는 정치적 목적까지 지닌 자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번 이러한 자료들에 빠져들면 밴드웨건 효과, 확증편향 등에 대해 신뢰가 강화되어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한번 빠져들면 벗어나기 힘드니 처음부터 빠져들지 않는게 상책이다. 왜 이런 자료들에게 쉽게 속을까?
인터넷에서 한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어휘가 '팩트'이다. 이 팩트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팩트라 주장하며 내미는 자료는 신뢰도를 얻는 모양이다. 사실은 우스운 일이다. 우선 팩트라는 외래어는 표현의 폭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한국어는 팩트라는 단어가 필요할 정도로 빈약한 어휘를 지니고 있지 않다. 분명 '나는 인간이다'를 '내가 인간이라는건 팩트다'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우리가 팩트라는 표현을 듣는 분야는 주로 사회 분야다. 사회과학에서는 사실이라 할 수 있는 이론이 별로 없다. 아직까지 인간에게는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현상들을 효과적으로, 실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반 지식이 부족하다. 혹은 기반 지식은 충분하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회과학에는 그저 각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통찰들이 있다. 이 통찰들 중에는 위대한 것들도 있지만 이를 Fact라 부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왜 인터넷에서는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에 '팩트'라는 표현이 유행했을까?
통찰은 형태가 중요하지 않다.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에게는 한문장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대중들에게는 정말 위대한 통찰을 담은 설명보다도 수식, 화학식, 그래프, 표, MRI 등이 중요하다. 이러한 자료들이 포함된 설명은 전문적인, 신뢰도 높은, 팩트에 기반한 설명이고, 단순히 활자만 이용한 설명은 신뢰도 낮은 '뇌피셜'이다.
심지어 글만으로 이루어지는 설명에서도 대중들에게 착각을 줄 수 있다. 주장, 설명과 관계 없으며 뒷받침 할 근거로 작용할 수 없음에도 전문적인듯 보이는 표현을 섞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의 신뢰도는 굉장히 높았다. 실험자들이 '나쁜 설명'으로 규정하고 제시한 글에 '전두엽', '뇌검사'와 같은 단어를 섞었더니 나쁜 설명의 신뢰도가 '좋은 설명'을 압도했다. 만약 여기에 수식, 화학식, 표, 뇌사진까지 놓여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러한 사실들은 인류에게 지성과 고고함이 있다고 믿고 싶은 나에게 비참함을 준다. 여러분들은 비판적 사고를 잃지 않으시길 바란다. 끊임 없이 의심하라.
참고
Deena Skolnick Weisberg, Frank C. Keil, Joshua Goodstein, Elizabeth Rawson, and Jeremy R. Gray - The seductive allure of neuroscience explanations. Journal of Cognitive Neuroscience, 20, 470–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