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스팀잇을 시작했었다. 나는 내 아이디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사실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너무 헤매고 있어 KR 태그를 알려주었다. 친구의 아이디를 찾아냈지만 단 한건도 보팅하지 않았다. 내 기준에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아무에게도 스팀잇을 추천하지 않았다. 나와 친한 사람에게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 기준을 설명하며 기준에 맞지 않으면 보팅하지 않겠다는건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스팀잇의 투명성은 아주 치명적이다. 서로 모르는 체하여도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실수인지 상호 간에 미리 잘 말을 맞춰놓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티가 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영속적이다. 굳이 세세한 관계를 분석하지 않아도 보팅 내역만 가지고도 금새 관계를 특정할 수 있다. 모르는 체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리스팀을 하고, 다른 스티미언들에게 소개한다. 그래서 시작부터 앞서가게 된다. 나는 스팀잇이 다단계라는 말을 아주 우습게 여겼지만, 좋은 추천인을 가지고 시작하는게 유리한걸 보면 무조건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다. 이토록 서로 끌어주는 문화가 활성화 되어 있다면 최근에 논란이 된 이들은 어떤 죄를 지은 것일까?
그렇다고 서로 아는 사이에게, 서로의 글을 완벽한 타인의 글로서 평가하라는 것도 아주 무리한 부탁이다. 나에게 자주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을 타인으로 대하는 일도 어려운데 일상에서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사람을 타인으로 대하라니? 그래서 내 주변인에게는 앞으로도 소개하고 싶지 않다. 아니, 혹시 소개하더라도 내 아이디를 알리고 싶지 않다. 내 원칙을 해칠지 모를 위협을 내 손으로 가져올 순 없다.
내가 익명으로 남고 싶은 이유는 다른 이유도 있다. 익명으로서 글을 쓰는 나와 주변인을 대하는 나의 페르소나는 명확하게 다르다. 꾸며낸 가식이 아니라,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라 할까? 마침 @springfield님이 관심 없는 사람의 관심이라는 글을 쓰셨다. 아마 공감하실 분들도 많을 것이다. 아마 주변인이 있다면 내 활동은 조금은 달랐겠다. 지금도 몰래 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디를 너무 생각 없이 급하게 지어 너무 쉽게 내가 누군지를 유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소크라테스 흉상이라니? 나에게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그래도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익명으로, 엄밀히 말하면 필명은 익명과는 다르게 기능하지만, 여러분들과 타인으로서 관계하는건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우연히 만난 사람, 가령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처럼 "내 사람"이 아닌 타인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들과 함께한 것도 이제 꽤 시간이 흘러, 이제 완벽한 타인으로서 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러고보니 지금 임차인들께서 제각각 활동계획을 제시하고 계시니 저도 무언가 말씀을 드리긴 해야겠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글을 열심히 읽고 보팅을 할텐데 기본적으로 창작자보다는 큐레이터에 관심이 많습니다. 큐레이터라는게 거창하게 큐레이션 리포트 올리고 그런 활동이 아니라 열심히 글을 읽고 보팅하는데 꼴랑 25%의 큐레이션 리워드, 심지어 스팀달러의 강세로 25%도 온전한 25%가 아닌 보상을 받으며 다른 창작자들에게 감정적,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상세히 쪼개어보면,
평가의 척도를 제시한다는게 썩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오해는 없길 바라여 조금 늘어놓았습니다. 기타등등에 해당하는게 뭔지 궁금하시다면 스팀챗 kmlee로 연락 바랍니다. 오늘 보팅파워를 쓰고 싶어서 12시간을 돌아다녔는데도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건전한 창작자, 소비자가 늘어나길 바랍니다. 주변에 "이 사람은 kmlee의 또라이 같은 평가기준을 통과하고도 남는 사람이야!" 싶은 분이 계시면 꼭 소개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기존에 제가 좋아하지 않는 활동을 하셨던 분이더라도, 제 보팅이 어지간하면 더 높은 보상을 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기존에 하시던 활동을 그만두시면 제가 알아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