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다면화 되고 점점 더 복잡해집니다. 철학의 이름 하에 미학, 음악, 자연과학, 문학, 사회학, 정치학 등 넓은 분야를 다루던 인간은 점점 세분화 된 분야, 그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시각은 좁아집니다. 결국 다면화 되고 복잡한 세상에서 더욱 역동적이여야 할 인간은, 아주 좁은 전문 분야에 한정된 기계부품처럼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책은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Unflattening: A Visual-Verbal Inquiry into Learning in Many Dimension)'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것이 만화이며 동시에 교육학 박사 논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자인 닉 수재니스(Nick Sousanis)는 실제로 이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얻었습니다.
제목과 모티브는 플랫랜드(Flatland)라는 소설에서 가져왔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2차원인 평면에서 살고 있는 사각형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3차원에 살고 있는 우리가 더 상위 차원에 대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듯 평면에 살고 있는 도형들도 3차원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미친 소리로 느껴지지요. 물론, 도형 나름의 다양성은 띄고 있습니다. 사각형, 오각형 등 다양한 도형들이 있지만 이들 모두 2차원 도형의 형태를 넘은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 플랫랜드의 비유를 차용해, Flatland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Unflattening을 내세웁니다.
한쪽 눈을 통해 보는 시각은 온전하지 않으며 다각도로 보아야 사물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이 어떤 전달력을 갖는지 보이십니까?
현대사회는 다시 통합이 필요한 사회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기술의 발달은 인간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꿔놓을 것입니다. 가령, 인간 복제를 생명 공학의 손에 오롯히 맡겨놓는 것이 과연 안전할까요? 당장 인간 복제의 시대에 선행되어야 할 논의들을 잠깐 생각해보아도 정말로 다양한 초점이 필요합니다.
복제 인간은 어떻게 자랄 것인가. 복제 인간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어떠할 것인가. 복제 인간과 원본 인간은 사회적으로 어떤 관계로 해석해야 하며 복제 인간은 원본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체세포를 기증한 사람, 난자를 기증한 사람, 난자 세포벽 DNA를 제공한 사람, 자궁을 제공하는 대리모, 미토콘드리아 DNA를 제공한 사람, 실제로 그 아이를 키우는 사회적 어머니가 모두 다를 때 누구를 어머니라 해야하는가.
이와 관련된 전문분야를 나열해 보아도 법학, 생명 공학, 유전학, 의학,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 철학, 법학 등 너무나 많은 분야갸 엮여 있습니다. 사회와 개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기술에 해당하지 않는 개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술적인 진보는 물론 생명 공학도들에 의해 일어나겠지만, 그러한 진보가 진정 인류의 진보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첨부한 본문의 내용처럼 한 눈으로는 옳게 볼 수 없습니다.
다시끔 찾아올 통합의 시대, 단순한 협업에서 그치지 않고 다각도의 시각을 공유할 필요성 또한 나타내는 이 책은 현대인이 한번쯤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림에 재능이 조금만 있었으면 저도 이러한 형식을 빌려보고 싶을만큼 시각적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은 파괴적인 전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평에서 지나치게 책을 분석해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 또한 독자들에게 경직된 사고를 부여하는 플래트닝이라 생각하여 책의 내용보다는 언플래트닝이라는 개념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바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플랫랜드에서 나온 말을 인용하고 마치겠습니다.
북쪽이 아니라 위쪽(Upward, Not North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