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가 어지러이 늘어져있는 아이의 방을 생각해봅시다. 방을 청소하기 전에는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그 방을 청소하면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갈 여지가 생깁니다. 분명 이는 방의 구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다면화로 나아가는 길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돈된 방의 형태는 정돈하는 부모의 의사가 크게 반영된 결과이며 새롭게 방에 들어설 물건들도 부모의 의사에 따릅니다.
"나는 어딨는지 다 알아요!"
아마 정돈을 잘 하지 않는 자식을 두신 어머니, 아버지들은 여러번 들어보셨을 말입니다. 이는 변명처럼 들리지만 정리 후에 아이가 허둥지둥하며 자신이 놓아둔 물건을 찾지 못 하는 걸 보면 그저 변명만인 것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질서에 의해 자신의 질서가 무너진 것입니다.
인간사회가 발전하며 인류는 생존 외에도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의 여지가 생겼음에도 주도적인 세력은 있습니다. 왕과 귀족, 종교가 원하는 것은 융성하며 이들이 배척하는 문화는 쇠락했습니다. 이는 비단 권력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러한 절대권력이 해체된 현대 사회에서도, 숫자에 의한 질서 또한 아주 흔하며 강력한 획일화입니다. 스팀잇 상상력 릴레이에 출품한 맹점을 넘어; 창작자와 소비자의 결합이란 글에서도 이러한 숫자에 의한 질서를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인기 없는 컨텐츠는 곧 가치 없는 컨텐츠인 것이 현대 사회입니다. 심지어 비주류를 추구하는 것조차도 하나의 유행이 되었습니다. 남성들의 다양한 취미생활은 키덜트, 맨스케이브 등 키워드로 축약됩니다. 유행을 따르지 않으며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힙스터라는 카테고리 하에서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잃습니다. 이로 인해 병적으로 유행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유행이 되면 빠르게 다른 비주류를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태가 또 하나의 유행이 됩니다. 이러한 세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초야에 묻혀있는 창작물에 "비주류도 매력이 있으면 발굴된다. 이건 그저 매력이 없는 것!"이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하지만 획일화의 이면이 다면화라 하여 다면화가 하나의 획일화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공정합니다. 지금까지 하얀 도화지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이 번져나가며 큰 얼룩을 이루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저는 염세적인 사람은 아니니 이번에는 흰 도화지 자체도 논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단순한 이야기이기는 합니다. 왕과 귀족, 종교의 눈에 들어야 하던 과거에 비해 대중과 기업의 눈, 즉 자본의 눈에 들어야 하는 현재가 훨씬 다면적입니다. 거대한 자본에 의한 시장독점을 경계하는 현재가 과거보다 다면적입니다. 시장이 작을 때는 최소 10%의 대중을 만족시켜야 했다면 지금은 1%의 대중의 마음이라도 사로잡는 것에 성공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태는 또 다시 획일화를 낳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 글이 영원히 챗바퀴에 갇히겠죠. 이런 글을 쓰는데도 5시간 이상이 필요한 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글이 되고 맙니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시작한 글이 별 다른 희망을 담지 못하고 그저 사회는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라는 낙관만 제시하게 되었네요. 그래도, 계속해서 나아질 것만은 확신합니다.
처음 이 글이 시작하던 문장은 '저도 골방 철학자가 아니라 다양한 취미를 가진 활동적인 사람임을~'으로 시작해서 취미와 일상을 이야기하려던 글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되는걸 보니, 더 이상 골방 철학자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도 알아듣기 어려운 글이 되었네요. 정말 골방 철학자답습니다.
변명을 조금 하자면 아무래도 즐기는 시간에 사진을 찍는다는게 너무 귀찮다보니 사진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진이 없으니 글로 설명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다른 분들 글보다 재미 없어지더라구요. 결국 내 나름의 표현법은 이런 글 밖에 없네요.
그래도 저 취미 많은 사람입니다. 3일간 즐긴다고 글도 못 썼다구요... 정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