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교묘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시험한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냉장고에 케이크를 넣어놓고, 금연을 하겠다며 남은 담배와 라이터를 버리지 않는다. 금주를 하겠다며 술이 빠지지 않을 자리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다짐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은 셀 수 없다. 그들에게는 다양한 핑계가 있다. 유혹에 대한 내성을 키우기 위해서라거나 한주간의 성취에 대한 보상을 주말에 갖기 위해 한주가 시작될 때 미리 사둔다는 식으로 이런저런 구실을 두지만, 본질적인 목적은 패배하기 위함이다.
중독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기에 질병이다. 그 사실을 스스로도 알면서도 자신을 유혹하는 물질을 가까이 두고 스스로를 시험하는 이유는, 인간의 뇌가 그 물질들을 원하고 결국에는 패배할 시험에 들게 하기 때문이다. 뇌는 그 물질들이 가져다 준 도파민을 잊지 않고, 정신을 속여다며 그 물질들을 가까이 할 구실을 만들 뿐이다.
결국 뇌는 원하는 바를 이루고, 정신은 고통 받는다. 당장의 도파민은 자책으로 돌아온다. 스스로의 의지가 약하다는 느낌은 사람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중독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기에 질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겨야한다. 그리고 의지가 강하면 이겨낼 수 있을거라는 망상을 버리고 뇌의 속삭임을 떨쳐내야 한다. 훌륭한 변명이 되어줄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친한 사람의 생일이라서 술자리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고 파티의 주인공이 권하는 술을 거부하는건 예의가 아니라거나, 기분이 너무 나빠서 달콤한 케이크를 먹지 않으면 떨쳐낼 수 없다던가, 너무 괴로워서 술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는 둥의 변명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 끝 없는 합리화는 결국 자기 자신을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겨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의지를 과신하지 않는게 좋다. 유혹에 넘어가서 실패한다면 합리화를 위해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자신의 뇌는 도파민을 원했고, 그래서 도파민을 주는 물질을 거부할 수 없었다는 정도로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취약한 스스로를 위해서 자신이 시험에 들 상황을 피하는게 좋다.
하지만 이게 쉬웠다면 세상에 중독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독자가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의 무지가 중독자를 더욱 괴롭힌다. 중독자는 자신의 의지가 부족하다며 충분히 자책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도 끊임 없이 중독자의 의지가 부족하다며 계속해서 중독을 의지의 문제로 국한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힘들다. 앞으로는 충분히 스스로를 시험하고 있는, 그것도 패색이 짙은 싸움에 시달리는 그들을 위해 따뜻한 세상이 찾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