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싸이코는 바빠서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싸이코의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은근하게 묻고 은근하게 답한다. 드러냄과 감춤의 기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표현을 갈구한다. 그들이 비교적 순수했던 시기이다. 싸이코의 사춘기가 길어지며 싸이코는 더욱 더 이상해졌다. 인터넷이 보급되며 싸이코는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냄과 감춤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되었다. 메신저의 상태메세지는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드러냄이 너무 과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그러면서도 은근하게 드러내고 싶어 고생할 필요 없다. 참 우스운 일이다. 싸이코와 싸이코의 주변 사람들은 하는 짓이 똑같은데 서로 상대가 적당히 알고, 적당히 모르길 바란다. 그리고 여전히 알아챈 티를 내고 싶으면서, 짐짓 모르는 체 한다. 그들에게는 큰 고민이다. 알아차린 티를 너무 과하게 내서도 안 되고, 아무 것도 모른다고 여겨지지도 않아야 한다.
싸이코는 문장을 만들어내느라 참 고생했다. 지나치게 허접한 문장을 보고 친구의 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평가절하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세련되지 않은 드러냄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유쾌한 친구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는 바로 노랫말이다. 작사가 또한 그들 중 하나이기에 작사가들은 그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사실은 작사가들의 가사는 싸이코와 주변 사람들이 하는 행위의 연장선에 있다. 노랫말을 통해 드러냄과 감춤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리고 싸이코와 주변 사람들은 노랫말을 빌린다. 이는 편법이다. 노력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드러냄과 감춤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아주 편리한 위장도 있다. "그냥 노래가 좋아서."라는 위장은 또 하나의 드러냄과 감춤이다. 이 유치한 짓의 역사를 보면 현대인의 아동기가 길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오춘기와 같은 유행어로 자신들의 유치함을 감추려 하지만 아동기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싸이코는 남들에게는 참 쉽게도 "철 들어라."는 조언을 하는데 싸이코는 언제쯤 철이 들런지.
이제 내가 왜 싸이코를 싸이코라 부르는지 알겠는가? 이전에 싸이코가 "허접한 문장"이라 표현한 문장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고도 대중들에게 이를 내비칠까, 말까를 수백번을 고민한 끝에 탄생한 문장일텐데 이를 그저 "허접한"이라 평했다. 싸이코 자신은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 낼 능력도 잃고 노랫말이나 빌리는 처지가 아닌가? 그래도 여기에서 그쳤다면 내가 싸이코를 싸이코라 부르진 않았다.
싸이코는 나이가 들수록 드러냄보다 감춤에 집중했다. 스스로도 과거를 돌아보니 너무나도 부끄러웠던 것이다. 싸이코에게는 참 간단한 변명이 있었다. "흑역사"라는 한마디로 사춘기 소년의 감정을 부끄러운 과거로 묻어버렸다. 유치하고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이긴 했으나 그래도 순수했던 시절이다. 흑역사라는 단어는 효과적인 변명이며 동시에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무례한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스스로 흑역사라 공언한 과거는 밀봉되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화를 낼 명분도 만들어준다. 싸이코의 의식의 발달에 따라 싸이코의 문장에도 드러냄이 사라졌다. 감춤만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며 드러냄의 역할은 문장의 존재 자체에만 맡겨두었다. 그러면서도 드러냄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졌다. 이제 싸이코는 감정을 표현하는 선에서 만족하지 못 한다. 싸이코는 자신의 의식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드러냄을 최소화 해야한다. 싸이코는 스스로 드러낸 사실을 알아챈 사람을 원하는게 아니다. 그래서 누구도 싸이코의 문장에 깔린 싸이코의 의식을 이해하기 어렵도록 한다. 노랫말의 힘을 빌리던 과거는 어디가지 않았다. 누가 어설프게나마 싸이코의 의도를 추측하려 들면 "그냥 글이니까..."하고 넘기는 모습이 그 시절의 싸이코 그대로다. 싸이코의 주변 사람들도 드러냄의 욕구는 이전에 비해 강해졌으면서 감춤에 더욱 집착하고 있다.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모순은 아니다. 드러냄의 욕구가 너무나도 강해져서 완전히 감춘 사실이 드러났을 때와 같은 강렬한 드러남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싸이코와 주변 사람들은 서로의 욕구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그들은 변한 것 같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하여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시도해도 이해할 능력도 없지만, 정말 드물게 상대가 실수하여 감춤에 충실하지 않아 의도를 얕게라도 엿볼 수 있었을 때도 그들은 감춤의 미학에 충실하다. 상대에 대한 반응도 하나의 표현이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상대의 의도를 이해했다는 사실을 감춘다. 그러면서 또 은근히 자신이 이해했음을 알리고 싶은 저열한 욕망에 단서를 남긴다. 그들은 남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으면서 언젠가는 자신을 이해할 이가 나타날 것이라 믿고 있다.
실로 싸이코와 유쾌한 친구들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이들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공감하는 순간과 텔레파시가 가능한 시대 중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까?
자, 지금까지 싸이코를 싸이코라 부르는 싸이코의 독백을 보았습니다.
자, 지금까지 싸이코를 싸이코라 부르는 싸이코의 독백을 소개하는 싸이코를 보았습니다.
자, 지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