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에 따른 차별

kmlee(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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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미숙한 나이였을 때 첫 과외를 했습니다. 얼마를 받는게 적당한지 모르겠어 주변을 살펴보니 과외시장에는 업계표준이라 할만한 가격이 없더군요. 정말 스팩트럼이 넓어 마땅한 가격을 제시하지 못 하고 그냥 학부모께 과외비로 얼마를 생각하고 계시냐 여쭈었습니다. 당시 그 학무보께서는 제가 무경험자라는걸 생각하면 상당히 높은 금액을 제시하셨습니다. 한번 가격이 정해지니 그 가격이 곧 제 가치가 되더군요. 계속해서 그 가격을 기준으로 받았습니다. 조금 더 주시는 분도 계셨고, 조금 깎아달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래도 전부, 소개로 알게 된 분이니 기준치가 된 가격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큰 차이 없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이전에 가르치던 학생들과 전혀 관계 없는 학생도 맡게 되었습니다. 그 학부모께서는 제가 평소 받는 과외비를 모르셨습니다. 평소 돈을 너무 많이 받는 것 같아 약간의 죄책감을 지니고 있던 저는, 평소 받던 것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맡은 모든 학생들과의 수업을, "이제 혼자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하다."는 학생의 의사와 함께 마쳤습니다. 그 학생들은 대입 이후 감사하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고액의 학원 특강을 수강하기로 했다."는 학부모님의 의사와 함께 끝이 났습니다. 당연히 후에 그 학생은 저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리 못 가르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예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최저시급을 생각하면 일당이 상당했습니다. 식사를 예식장 뷔페에서 한다는 것도 장점이었죠. 주로 주차장 관리와 잔심부름들을 했습니다. 감독하시는 분도 잘 해주셨습니다. 예식장 하객들 중에는 진상도 많았지만 좋은 분도 많았습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최저시급보다도 훨씬 적은 시급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카페가 좀 한적해서 업무 중에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원했습니다. 점장은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근무하는 내내 한순간도 잔소리가 없었던 순간이 없습니다. 거기서 근무하는 도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일을 3일 쉬었습니다. 3일 내내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장례절차를 마친 탓에 늦잠을 잤습니다. "너만 겪는 일이냐?"는 질책에 다음 날부터 가게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점장은 살면서 나를 "군대를 안 갔다와서"라는 수식어와 함께 평가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미국인 친구를 사귄 적 있습니다. 그는 처음 자신의 직업을 "똥 가지고 돈 버는 일"이라 소개했습니다. 그 친구는 배관공이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자조적으로 들리는 말을 그 친구는 웃으며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배관공 생활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더군요.

분명 한 인간의 가치는 임금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 이상을 담은 것이 아니라 진정 그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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