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깊은 고민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주제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단순한 고민이 아니라 '깊은' 고민이라고 부르는 주로 주제는 답은 없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위안을 얻기도 어려운 고민이다. 이러한 고민들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크게는 이야기 자체가 가까운 사람들과 밀접하게 엮여있어 가까운 사람에게는 털어놓기 어렵거나, 가까운 사람이란 오래토록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기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게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참 슬픈 일이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고민만을 가까운 사람과 나누고, 혼자서 해결하기 벅찬 고민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혼자서만 안고 있기에는 힘들지만 도저히 가까운 사람에게는 털어놓지 못 하고,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 털어놓는 경우도 있다. 내 치부를 알아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사람, 내 가까운 사람들과 엮여있지 않아서 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는 사람에게 털어놓는다. 이 과정에서 가까워지기도 한다.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과 가까운 사람이 되는건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은 '가까운 사람' 그룹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 사람을 다른 가까운 사람들과 격리시킨다. 이따금 고민이 더 이상 고민이 아니게 될 때 그 사람도 '가까운 사람' 그룹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러지 못 하고 그 사람을 감정의 배출구로 둔다. 그렇게 사람을 감정의 배출구로 여기고 필요할 때만 불러내서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나쁘게 본다. 사람을 자기 좋을 때만 이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 한 이유가 첫문단에서 이야기한 이유들 중 하나라면, 나쁘다 보기보다는 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가까이 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평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다면 정말 깊은 고민에 대해서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도움이 될 수 없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엮여있어 자신의 치부를 공유할 것이 두렵다면, 그로 인해 관계가 무너질 것이 두렵다면, 그렇다면 그들을 진정 가까운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딱한 사람이다. 기꺼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가까운 사람'에 편입시키지 못 하며 눈치를 살펴야 하는 안타까운 사람이다.
물론 가까운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 하는 이유는 이 외에도 다양하다. 상대가 걱정할 것을 걱정하여 도저히 말을 꺼내지 못 하는 경우도 있고, 항상 타인의 고민을 들어주는 입장인 사람은 스스로에게 역할기대가 생기기도 한다. 그 역할기대는 자신에게 기꺼이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강요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서로 나누고 평안을 얻어야 할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평안을 찾을 수 없다면 이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안타까운 현대인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