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 인공지능은 공상과학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공상의 사회를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공상에 기대어 현실에 해당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까지 하는 주제이기에 아무리 반복되어도 질리지 않고 계속해서 사랑 받는 주제입니다.
이번에는 중요한 두가지 주제 중 인간복제를 다면적으로 다루어볼까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 없이 논의된 주제이기에 식상한 관점도 있을 것이지만 신선한 관점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은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 법과 도덕의 대립'라는 글에 이어서 준비하던 글인데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해서 미루었습니다. 저 글이 3달 전에 쓴 글이라는걸 생각하면 아주 오래 묵은 글이군요. 보상이 0.55달러인걸 보니 스팀잇에서의 내 입지도 당시보다 훨씬 좋아졌군요.
'무섭고, 무서운 세상'이라는 글을 쓸 때도 한번쯤 소개하고 싶었으나 또 미루어졌었지요. 4장에서 간략하게 설명하긴 했습니다. 다시 한번 글들을 읽어보니 길게 끌고 갈 생각 없이 시작한 글이라 굉장히 엉성하여 부끄럽지만 삭제할 방법도 없으니 어쩔 수 없군요.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인간복제' 기술이란 유전자 복제 기술과 나아가 유전자 재조합, 조작까지 지칭합니다. 지금부터 해당 기술과 엮인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기술적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절대'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해도 미리 대비하여 손해볼 것은 없습니다. 최소한, 재미라도 있을테니까요. 정말 어려운 주제이지만 최대한 간단하고 재미있게 다루어보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인간복제기술이 직면한 가장 큰 비판은 배아가 갖는 생명의 존엄성에 있습니다. 연구과정에서 배아를 이용하는데 이것이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비윤리적인 연구라는 것입니다. 이는 배아를 인간과 동격으로 보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낙태 문제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문제이지요. 이 문제는 굉장히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도덕적인 우리의 감정은 배아 또한 하나의 인간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 존재이므로 이를 해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임산부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심지어 아이를 지우기 위해 약을 먹더라도 살인 내지 과실치사로 기소되지도 않고 태아의 생물적 아버지에게 살인방조의 죄를 묻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 외에도 생명의 존엄성에 기반한 다양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생명의 존엄성을 근거로 반대하기도 하지요. 화장품 연구를 위해 토끼를 학대하는 것도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합니다. 두렵다고 묻어두어도 음지에서 진행됩니다. 기술이 가져다 줄 파급력이 굉장하기에, 나쁜 마음을 가진 집단에서는 더욱 윤리에 어긋나는 과격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기술을 완성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비교적 옳은 편에서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주요한 쟁점이면서도, 동시에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쟁점이기도 합니다.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라면 어쩔 수 없다고 답했겠지요. 이 글은 인간복제기술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곳이 아니라 언젠가 찾아올 인간복제시대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위한 글이기에, 이 쟁점에 대해서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The science of life is a superb and dazzlingly lit hall which may be reached only by passing through a long and ghastly kitchen.
생명의 과학은 길고 무서운 부엌을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을 훌륭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홀이다. -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arnard)
사회질서의 관점은 항상 보수적입니다. 정확히는 보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에 베타테스트는 없기에 개개인의 삶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변화에 보수적인 것이지요. 이는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중요하고 사회 전체의 관점으로 보아도 사회변화로 인해 삶이 무너진 개인이 사회질서에 어떤 감정을 품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찾아올 변화가 너무 거대하기에 최대한 공정하고 헛점이 적은 법과 제도가 나오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간복제가 가져올 또 다른 하나가 가족의 파괴입니다. 인간복제는 필연적으로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를 파괴합니다. 인간복제시대에서 태어날 아이들에게는 뚜렷한 생물학적 부모가 없을 수도, 수많은 생물학적 부모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형태의 가족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독신들이 자신들의 유전자를 조합한 아이를 공동양육 할 수도 있으며 독신이 자신의 복제를 자식으로 홀로 키울 수도 있습니다. 생물학적 부모가 하나 밖에 없는 아이와 생물학적 부모가 수도 없이 많은 아이는 과연 어떻게 자라갈까요?
이혼과 재혼, 입양을 통해 생물학적 부모와 사회적 부모가 다른 경우, 사회적 부모가 셋 이상인 경우는 지금도 흔한만큼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예상할 수는 있습니다. 의외로 큰 파급이 없을 지도 모르겠네요.
불임인 부부가 갖는 스트레스는 거대합니다. 결혼관계, 사회생활, 성생활, 정신건강까지 무너집니다. 아이를 보면 슬픔과 질투심이 생겨서 아이를 피하기도 하고 주변의 아이에게 정을 주어 대리만족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원해서, 혹은 불임으로 인한 것임에도 부부가 원만하게 무자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계속해서 좋지 않은 시각을 보내는 사회도 문제이지만, 그런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 경우에도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임이 아닌 경우에도 임신이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가령 부부 중 한쪽 혹은 양쪽이 유전병을 가진 경우입니다. 자식이 유전병을 피하길 원하는게 비윤리적일까요? 인간복제기술은 평생에 걸쳐 자식에 대한 죄책감을 지고 살 부모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행해지는 임신중절은 평생에 걸친 후유증을 남길 뿐 아니라, 상기한 생명존중에도 어긋납니다.
미국의 여성인권운동가들도 인공수정 등의 보조생식이 여성인권을 무시하는 처방이라고 처음에는 크게 반발하였지만 불임인 부부가 호소하는 거대한 고통에, 한발 물러서서 이를 용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절박한 부부에게서 기회를 보고 그들을 착취하는 악인들은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차라리 엄격한 관리 하에, 이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연구가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안 낳는' 부부는 존중해야 하지만, 이들을 존중하기 위해 '못 낳는' 부부의 고통을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물론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의식적으로도 더 나아가야겠지요.
불임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Samantha Hayes의 Until You're Mine이라는 소설이 기억납니다. 불임인 여성의 스트레스를 표현한 스릴러였습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여성으로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하지만 소재가 무겁고, 잔인하기도 하니 읽어보실 분들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결정론자가 받는 다양한 질문 중 하나가 있습니다. "네 삶이 결정되어 있다면 네 존재의 가치는 무엇인가?"하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도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저는 결과가 결정되어 있는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의 행보가 흥미롭듯 개인의 인생이 흘러가는 것도 정해져 있다 하여 가치가 퇴색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답변할 가치가 있는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네 유전자를 복제한 아이는 당신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미리 알게 되는게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영화나 소설도 결과를 알고 본다면 재미가 퇴색되듯 복제된 아이의 삶의 가치도 부족해지는게 아니냐는 질문이지요. 하지만 A와 A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해서 키우는 아이는 다른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시대가 다르고 양육자, 양육방식이 다르고 관계하는 모든 존재가 다릅니다. 거의 동시에 태어나서 같은 부모 밑에서 거의 같은 양육을 받고 비슷한 또래 친구를 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도 표현형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간단합니다. 어릴 때는 정말로 구분하기 어려운 일란성 쌍둥이들에게도 어느새 확연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환경이 확연하게 다른 A의 아이가 A와는 크게 다른 삶을 살 것이라는게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요?
3달 전에 준비한 글은 이정도입니다. 간단하게 메모만 남겨놓고, 글로 풀어낸 것들은 모조리 지워버려서 놓친게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으셨기를 바랍니다. 마침 내일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의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 2049도 개봉하는군요. 후속작 개봉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블레이드 러너를 방영했으니 연휴 중에 보신 분들도 계시겠군요. 저는 내일 보고 와서 감상평을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