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들어스: 섀도우 오브 워(Middle-Earth: Shadow of War)로 찾아뵙겠다고 약속드렸기에 초안을 작성하고 보니 너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평소라면, 내 글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겠지만 이번에는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신 분들께는 한마디만 전합니다. 전작과 장점, 단점이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참신하지만 큰 용도가 없는 네메시스 시스템. 흥미로운 진행과 형편 없는 끝맺음. 남은건 화려하고 손맛 있는 액션.
전작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 영화, 게임, 만화 등 어떠한 창작물에서나 발견되는 성질이 바로 전작과 후속작의 유사성입니다. 심지어 단점까지도 공유하는 이 유사성은 왜 나타날까요?
가장 쉬운 답변은 같은 사람이 만들었으니 유사하다는 답변일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제작에 참여한 이들이 바뀌더라도, 제작을 지휘하는 이가 같다면 그 지휘자의 능력을 벗어나기 어렵겠지요. 단점을 알고 있다고 해서 쉽게 고칠 수 있는게 아니며, 장점은 어디 가지 않으니 장점도 그대로 계승됩니다.
두번째로, 쉽고 빠른 수익을 추구하는 성향입니다. 이는 주로 자금을 제공하는 집단의 문제로 여겨집니다. 안타깝게도, 창작자보다도 저작물에 큰 영향력을 끼치곤 하는 창작자의 고용주, 투자자들은 창작자에게 자유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비록 창작자의 자유로운 창작에 의해 전작보다도 대단한 창작물이 탄생할 수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작물의 가치를 전혀 알아보지 못 하고, 완전히 망쳐버리기도 합니다. 조급해진 투자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닥달하기도 합니다. 마침 섀도우 오브 워를 만들어낸 모노리스 프로덕션도 워너브라더스 산하에 있고, 워너 브라더스 경영진이 영화 감독들에게도 굉장히 정신 나간 요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본 글의 목적은 창작물이 완전히 망쳐지는 이유가 아니라 같은 손에서 나온 창작물의 유사성에 있으니 자세히 이야기 하지는 않겠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사측에만 책임이 있는건 아닙니다. 물론 직접적인 압박이 없다 하더라도, 창작자에게는 책임감이라는 형태의 심적 부담감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믿고 창작을 맡겨준 사측, 자신과 자신의 창작물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아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은 유연한 사고와 도전정신을 무너뜨리기 쉽습니다. 이에 굴복하여 창작자들은 쉬운 길을 가곤 합니다. 운이 좋다면 전작을 충실하게 계승한 수작으로 여겨지고, 운이 나쁘면 전작의 명성에 기생하는 아류작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팬들의 요구입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인 프리퀄이라 생각했던 창작물이 있었습니다. 경영진이 창작자들의 자유를 크게 보장하고, 심지어 전작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라 격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신선한 창작물이 되었으나, 결과는 크게 좋지 않았습니다. 비록 평도 좋았고 나쁘지 않은 최초 수익을 거두었지만, 팬들이 불매운동을 펼쳤습니다. 이건 자신들이 알던 시리즈가 아니며, 원하던 후속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극렬 팬들의 광기에 놀랐던 순간입니다. 반대로 평단에서도 기존 시리즈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던 프리퀄을 지지하는 신규 팬들의 지지도 컸기에 꽤나 큰 충돌이 있었습니다. 결국 시리즈는 거기서 끝이 났습니다. 경영진, 투자자, 창작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도저히 향방을 정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가 생각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미저리에서도 미저리의 극성 팬인 애니 윌스크는, 자신이 사랑하는 창작물에 대한 사랑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신한 아이디어에 가치를 높게 보기에 비록 그 아이디어가 제대로 정제되지 않아서 거칠고 미숙한 상태로 선보인다 하여도 아이디어와 시도에는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입니다. 물론 아이디어의 수준과 창작물의 수준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아쉬움도 커지기에 강한 비판도 곁들이지만요. 창작자들이 앞으로 더욱 자주 틀을 깨는 시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10조쯤 있었으면 팍팍 지원할텐데, 10조는커녕... 그래서 아쉽게도 딱히 응원할 방법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