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사람의 인사말의 의미

kmlee(64)
Published in
#kr-life
Words
432
Reading
2 min
9y
Listen to this post
~3 min

pg.jpg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하는 사람이었다. 내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미안해서? 빚을 지기 싫어서? 약한 모습을 내세워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계산해서? 아니면 미안한 일이 생기면 꼭 표현해야 한다고 배워서? 아니면 진심이 아니더라도 일단 미안하다고 하는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학습되어서?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어느 하나만이 이유는 아니다. 나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럴 것이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래서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하는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나는 고집이 세고 아무리 주변에서 사과하라고 해도 사과를 하지 않은 적도 많았다. 아니, 그게 대부분이었다. 주변에서 사과하라고 하니 더욱 고집을 부렸을지도, 아니면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신념과 본심을 거스른 사과를 하는게 위선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내 사과는 몇몇 사람들을 향해있었다. 내가 유독 사과를 많이 하는 대상이 있었다. 그 대상들은 하나같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꾸며내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선의의 거짓말조차도 싫어한다.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한가지 특별한 이유가 더 있다면, 나는 믿었던 사람이 기대를 벗어나는걸 내 탓으로 돌린다.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하지 않았던 탓이라고. 나는 대체로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지만 사람을 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엄격하다. 그래서 내가 믿는 사람과의 마찰에서 "(당신을 실제 당신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서) 미안하다."는 의미에서도 미안하다는 표현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내가 사과를 줄이게 된 계기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 한다. 이것 또한 다양한 경로로 학습된 결과일테니. 하지만 내 마음에 생긴 여유가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라는건 명확하다. 나를 굽혀가면서까지 억지로 녹아들 필요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존감 또한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고작 이런걸로 사과를 원할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나친 사과가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줄어든 사과는 감사로 바뀌었다. 두가지 인사말은 묘하게 성질이 겹친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폐를 끼쳤음에도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상대는 이해하지 못 하거나, 이해하기 싫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감사를 표한다면, 상대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사과의 표현도 똑같이 가지고 있는 문제다. 미안하다는 사람을 비난하는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사과도, 감사도 표현하지 않아야 할까? 이러한 맥락에서 사과도, 감사도 상황을 묘면하기 위한 이기적인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을 벗어나는건 나에게만 긍정적인 일이 아니다. 나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나에게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건 상대에게도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상대도 알면서 내 사과에 사과로, 내 감사에 감사로 화답할지 모른다.

역시나 이 문제에서도 미묘한 온도 차이가 중요하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앞두고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고 싶다는 마음, 앞으로도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갈 사람과 부정적인 기억을 만들기 싫다는 마음은 다르다. 내가 진정 무엇을 목적으로 감사를 표하는지는 모른다. 이런 해석은 이기적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앞으로도 함께 좋은 기억만을 남기고 싶다는 정도의 이기심도 품을 수 없는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이라면,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끊임 없이 계산을 하고 살 수 밖에 없다. 의식적으로는 최대한 계산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오늘도 횡설수설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의 인사말의 의미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