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한날한시에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같은 교육을 받으며 동일한 생각과 느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제각각의 유전자로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개성 있는 생각과 느낌을 가진 인간이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것은 필연입니다. 그런 제각각의 인간이 서로 경쟁하는 것 또한 필연이겠죠.
이러한 경쟁은 본질적으로 차등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입장도 있습니다. 경쟁을 재화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요소라고 보는 입장이죠. 하지만, 이상적인 경쟁은 자유와 평등이 보장될 때 가능합니다. 경쟁의 목표는 각 분야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난 인간을 선별하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가진 모든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선입견 없이 기회를 주어야합니다. 최대한의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어야하고, 그렇게 길러낸 능력을 선입견 없이 평가 받아야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다름이 무조건 평등을 해치는 것은 아닙니다. 농구 선수와 축구 선수 사이에 우열이 있을까요?
기회의 평등은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고 이상적인 경쟁을 위해서는 평등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현대사회에서 경쟁이 불평등을 낳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역설은 경쟁 자체의 문제와 현대사회의 한계, 인간의 본성에 영향이 복합되어 나타났습니다.
첫번째로, 인간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인지적 편향을 포함한 다양한 비합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개인이 가장 경쟁력 있을 분야를 파악하는 것도 현재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능하다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이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를 무조건적으로 택하진 않습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아서'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죠. 실제 예술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진로를 예술쪽으로 결정하지 않는 사례들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모든 인간에게 걸맞는 경쟁분야가 있지 않습니다.
농구를 계속해서 예시로 사용해볼까요? 골대가 조금 더 높았다면, 규칙이 조금 달랐다면, 더욱 빛을 발했을 농구 선수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정말 다양한 규칙의 농구가 존재해야할까요? 농구1, 농구 2, 농구3 등이 있다면 선수들은 그러한 농구에서 경쟁을 하고 싶을까요? 팬들 또한 그러한 농구를 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힘들게 쟁취한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는 첫번째, 두번째 이유와도 모두 관련이 있는데 인간은 경쟁을 즐기고 승리의 쾌감에 전율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어려운 길에서 승리할수록 쾌감도 커지기에 자신의 재능과 다른, 더욱 어려운 길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경쟁률이 높은 분야에서의 승리는 경쟁률이 낮은 분야에서의 승리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각 분야에서 승자가 가지는 부와 명예에 차등을 부여합니다.
가장 먼저 선행될 일은 경쟁에서 뒤쳐진 이의 삶의 질 개선입니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부와 명예를 쟁취함에 따라 발생하는 차등은 아마 가까운 미래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철학이야기#2,인간의 의식]을 읽으셨던 독자분들은 역사적 제약에 대해 기억하실겁니다. 인간에게 맹점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했었던 개념이죠. 아마 경쟁 또한 역사적 제약에 의한 인간사회의 한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차등적인 보상의 폭은 줄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주장되는 것이 결과의 평등입니다. 저는 극단적인 결과의 평등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누가 어려운 일을 하겠습니까?), 일정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부모의 삶의 질은 결국 자식의 양육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결국 기회의 평등에 영향을 미치죠. 결국 기회의 평등을 위해서 일정 수준의 결과의 평등은 보장해야합니다.
이를 위해 기술발달이 기여할 수 있겠죠. 기술의 발달은 사회 전체의 자본을 향상시켜 결국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질 전체를 향상시킵니다. 또한 기술발달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냅니다. 현재는 빛을 발하지 못 하고 있는 재능을 지닌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생기는 것이죠.
여러 비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저는 자본주의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보편적 삶의 질을 향상시킨 기술발달도 극도의 경쟁을 통해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개인적으로 글의 감상은 온전히 독자의 몫인데 작가가 이에 관여한다고 생각해서 이테릭, 볼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바쁜 여러분들을 위해 중심문장에 볼드를 넣어봤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세요!
다음 주제는 공정함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