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 R. Tyler는 Why People Obey the Law에서 사람들이 사법절차가 자신들의 품위를 지켜주며, 공정하게 재판이 이루어진다고 느끼면 판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더라도 만족한다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표현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법절차에 대해 잘 알지 못 한다. 사법절차에서 시키는 일만을 하며, 기계적인 질문에 기계적인 답변을 하며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상태에서는 자존감이 유지되기 어렵다. 거기다 변호사에게 모든걸 맡겨놓는건 더욱 사람들을 위축되게 한다. 그 상황에서 내려진 판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나를 무시하는 재판장에서 내려진 판결, 그 판결에 납득하는 일이 가능할까? 게다가 방청객, 대중들은 나에게 욕설을 퍼붓는 상황에서 그 어떤 사람이 판결에 순응하겠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이 범죄자들의 갱생이며 정의라면, 분노를 아껴야 한다. 분노를 아끼고 범죄자들의 품위를 지켜주라. 만약 단지 화풀이를 하고 싶은 것이라면, 나 자신의 얼룩들을 모두 범죄자들에게 투영하여 모든 분노를 쏟아내고 후련해지기 위한 목적이라면, 차라리 처형하라. 최대한 잔인하게 처형하고 만족하라. 죄값을 치르고 나서 다시 당당한 시민으로서 살아갈 기회를 줄 생각이 없다면 어설픈 재사회화 프로그램 대신 고문과 공개처형을 도입하라.
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환자를 무시하는 기계적인 절차, 내가 어디로 가야하고 왜 가야하고 어떤 치료를 받으며 어떤 처방을 받는지 알 수 없는 절차. 그 절차 속에서 환자는 자존감이 내려간다. 만족도도 줄어든다. 이는 단순히 병원에서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만족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의사도 존중하는 나의 품위, 거기서 나오는 약간의 자존감으로도 삶의 질이 크게 늘어난다. 사람은 굉장히 섬세한 동물이다. 아차, 현직 의사들을 비판하는건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상호존중의 문제이다. 의사는 격무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시기, 질투에 시달리는 직업이다. 의사부터가 자존감을 유지하기 어려운데 타인의 자존감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겠는가? 우리 문화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대처와 대중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이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모조리 도박중독자로 몰아세우는 정부, 그리고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끊임 없는 비난을 쏟아내는 대중들. 하락장이 오기 무섭게 꼴 좋다며 투자자들에게 쏟아지는 비웃음. 이 속에서 어떤 화합이 가능하겠는가? 분명 화합은 필요하다. 급진적인 아나키스트가 아닌 이상, 제도권 편입의 필요성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사기거래소를 색출하여 투자자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암호화폐를 이용한 범죄를 방지한다는 의도에 반대할 이들이 얼마나 있는가? 그래서 표현은 항상 중요하다. 상대에게 불리한 이야기도 약간의 색체조절만으로 상대가 납득할 수 있는 말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최근 KR 커뮤니티에 있었던 사건을 살펴보자. 커뮤니티가 원하는게 화합과 의견의 조율이었는가, 아니면 공개처형이었는가? 그들에게 쏟아놓은 끝 없는 조롱, 당신이라면 이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들이 행동에 나서자, 추태를 보였다며 또 다시 비난이 쏟아졌다. 당신은 그 비난을 죄에 의한 당연한 벌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들의 죄라는 것이 굉장히 모호한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고한 이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다. 이들의 죄가 폐쇄적인 보팅풀이라면 커뮤니티는 전혀 결백하지 않다. 그들의 죄를 커뮤니티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죄인이 죄인을 모욕하는 행태다. 그들을 모욕한 스티미언들은 폐쇄적인 보팅풀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 그래도 마찬가지이다. 폐쇄적인 보팅풀을 죄목으로 그들을 처형했다면, 마찬가지로 폐쇄적인 보팅풀을 형성한 커뮤니티 일원들에게도 칼끝이 돌아가야 공정하다. 공정하지도 않고 품위도 지켜주지 않는 재판장에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Tom R. Tyler에 의하면 그들은 법을 따를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