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낚시대로 얻은 가족
유대인의 유명한 말 중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이 있다. 이 비유를 빌리면 나는 낚시대를 사주는 사람이다.
이 마을에 있는 사람 하나하나는 내 손이 닿아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현대사회에는 정이 없다는 말에 반대하고 싶었다. 나는 단정 짓는 말에 항상 반대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에 반대하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저 명제가 사실이 아님은 증명하지 못 한 것 같다.
안 될 말이지만 천재지변이나 전쟁 없이는 계속 이런 삶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특별히 해야 할 일 없는 일상, 혈연이 아니라도 가족처럼 정이 넘치는 공동체, 빛과 소음이 없어 커튼 없이 창문을 열어 놓고도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밤, 이 모두가 너무나 즐거웠다.
3. 붕괴
"이제 마을에 저희만 남았습니다."
가장 충성스러운 석만이 남아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잠깐이라도 충성이란 단어를 떠올린 내가 혐오스럽다.
사실은 내가 먼저 꺼냈어야 할 말이다. 석은 부양할 가족들이 있다. 물건을 팔 사람들이 없으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 물론, 나에겐 석의 가족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돈이 있다. 하지만 나는 물고기를 잡아 주는 사람이 아니다. 반면 무작정 고기를 잡아주는 박사라는 사람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인간을 사육하는 것이다.
"같이 갑시다."
화가 났다. 이번엔 석의 악센트로 말하지 않았다. 역시 놀리는게 아니라 즐거움과 애정의 표현이었다.
나는 왜 화가 났었을까. 도움이 필요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사육이라면 나도 사람을 사육하던 것인가?
고기를 잡아주는건 자립만 해치지 않는다. 고기를 낚아올리는 재미와 쾌감도 빼앗는 것이다. 이렇게 궁색한 변명을 해본다.
4. 사육
개들은 왜 인간을 따르는가. 자연에서 생존하기에 굉장히 불리한 형질도 인간의 기호에 맞다면 번성한다. 불독은 머리가 너무 커져 자연분만이 힘들고 닥스훈트는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짧은 다리를 가지게 되었다. 닥스훈트는 인간에게 귀여움 받기 위해 자연적으로 다리가 짧아졌는가? 개들이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도 인간이 개를 소중히 여겨 보답하는 것인가? 아니, 단순히 인간의 기호에 맞는 형질을 가진 개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도움이 필요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사육이라면 나도 사람을 사육하던 것인가?
난 그저 내 일상을 해친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이렇게 옹졸하다. 아니, 난 이렇게 옹졸한 사람이다.
5. 인형놀이
석의 차를 타고 떠난다. 나는 차가 없다. 차가 필요한만큼 먼 거리를 다닐 일이 없었다. 다닐 일이 없던게 아니라 둥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건 아닐까.
"거기 가면 민이도 있어?"
"글쎄... 민이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제각각 삶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사람들의 삶을 내 일상으로 만들었다. 그런 내가 일상이 무너짐에 대해 남에게 화를 내다니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어린 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마을을 만든다. 인형에 인격을 부여하고 각각의 관계를 설정한다. 아이의 세계에서 인형들은 모두 행복하다.
6. 새장 속의 자유
아무리 사나운 야수라도 인간에게 사육당하면 야생성을 잃어버린다. 지능이 높은 동물들이 길이 들면 인간의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추고, 인간에게 더 관심 받는 개체들을 질투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장 속에서도 자유는 있다. 울고 싶을 때 울고, 걷고 싶을 때 걷는다. 왼발을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다섯 걸음, 발을 모으고 다시 왼발을 시작으로 왼쪽으로 두 걸음. 원하는 곳에 누워서 원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 이런 자유조차 누릴 수 없다면 내가 박사보다 나은 사람이며, 박사는 진정 인간을 사육하는 인간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손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동물은 주인의 자유도 빼앗는다. 이들이 진정 자신이 받는 대우가 목숨보다 소중하다 여겨 까다롭게 구는건 아니지만, 나도 달콤한 약속도 마다하고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포로들처럼 길들지 않으리라.
아버지, 아들은 이렇게 유치한 사내가 되었습니다.
호흡이 극도로 빨라서 한 장 한 장 포스팅하기엔 분량이 너무 미흡하다 느껴 이렇게 엮어보았습니다. 그래도 분량이 적네요. 초고에는 내면묘사로 한 장, 내면묘사를 일절 하지 않고 행동과 대화만으로 한 장으로 풀어갔지만 퇴고 과정에서 이렇게 분량이 줄어들었습니다.
무릇 거목은 뿌리를 드러내지 않는 법인데 문학적 소양이라는 기둥이 부실한 탓일까요, 변명만 늘어놓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