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 6.25관련 TV를 보다가
어머님(35년생)께 여줘보았습니다.
"6.25때 엄마도 피난한다고 고생많이 하셨겠네요?"
(어머님) 피난은 무슨 나는 전쟁 난 것도 잘 몰랐다.
비행기 날아가는 것만 자주 봤지.
어머님은 지금의 통영시 옆 사랑도 아랫섬
출신이십니다.
일반화의 오류, 선입견, 고정관념이 무서운 것이네요.
한국에 전쟁이 발생했고 그시대를 살았던
어머님은 당연히 고생하셨겠구나..
단정하였지만
전쟁난것 조차 모르는 국민도 있을수 있다는 사실에
다소 어리둥절 했습니다.
초등학교만 나오신 아버님은 일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언제 외국어를 공부하셨는지
존경심과 궁금증이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여줘보았습니다.
(아버님) 아주 젊었을 때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탔는데
그 배가 일본으로 갔고,
선장과 선원 모두가 밀항을 했답니다.
1년 가까이 배에서 혼자 숙식을 하면서 돈을 모아
겨우 한국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담담하게 이야기 하시지만,
솔직히 저는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버님은 그 이후에도 원양어선을 타셨고,
솜씨 좋은 기관장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6살때 스페인 라스팔마스(원양어선 기지)에
선박수리 기술자로 파견을 가셨습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머님은
당시 학교들 다니던 형님과 누나는
전학을 시커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어려워
삼촌에게 맡기고,
아직 어렸던 저만 데리고
아버지가 먼저 가 계시는 스페인으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영어는 당연시 모르시고,
솔직히 한글도 잘 읽지 못하시던 어머님이
6살 아들을 데리고 머나먼 스페인까지 가셨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줘 보았습니다.
스페인 가실 적에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어머님) "말도 마라~~"
니가 비행기만 타면 안전밸트 안맨다고
땡깡을 부려서, 비행기가 이륙을 못했다고 합니다.
경찰처럼 생긴 기장이 와서 엄청 무서운 표정을 짓어야
안전밸트를 했다고 합니다.
외국은 아이을 가슴으로 안지 등으로 업는 문화가 없습니다.
어머님은 짐이 있어 저를 등에 업고가면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저의 스페인의 2년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는 6개월만에 능숙능란하게 스페인어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머님은 한국으로 오실적에
말이 통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제가 가서 통역을 해주어서 편하게
한국으로 귀국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8살에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6개월 정도 지나자
스페인어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혹시나 싶어
대학교때 서반어를 수강신청하였지만,
F를 받았습니다.
영어는 발음기호를 보고 포기했는데
스반어는 발음기호 문제보다 심각한
여성형과 남성형이 있는 아주 해괴한 언어였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올립니다.
스페인에서 느낀점과 비교해서
우리나라 시화변화에 대하여 글을 쓸 계획이었습니다.
내용이 길어져 본의 아니게 시리즈로 올리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스페인 라스팔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