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은 2009년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 날에 대한 기억은 없다.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도. 나는 뒤늦게 정치와 정의에 대한 고민을 한 학생이니까. 강력한 첫사랑에 실패하고 헤매던 때였다.
4년이 지나서 나는 박근혜를 보았다. 같은 해 겨울, 수서발 KTX 민영화와 대학 내 대자보 사태를 몸으로 겪었다. 나는 대학가를 돌면서 울었다. 정의로운 목소리들 앞에서, 한겨울인데도 가슴과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리고 3년이 지나서 나는 최순실을 보았다. 나는 부역자 박근혜의 탄핵을 염원했다.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으로 박근혜의 얼굴이 인쇄된 옷을 팔았다. 촛불을 든 사람들 뒤에서 몰래 그들을 지원했다. 옷 판매 수익금을 대구 아르바이트 노조가 부당하게 집행당한 벌금에 보탰다. 소심했지만 이것이 내 나름의 정의였다.
그리고 탄핵 심판일,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강력한 문장을 생중계로 들으며 또 한번 울었다.
나는 정의를 볼 때 곧잘 눈물이 났다.
2.
비를 피해 들어온 카페에서 노무현의 자서전을 만났다. 그땐 그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그가 살아 있을 당시, 한국 정치에서 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내 20대 대부분을 우경화된 사회에서 보낸 탓에 나는 찌그러지고 거칠어졌었다. 그러다 20대의 끝자락에 총선승리를 보았다. 가짜 보수의 몰락과 정권교체가 터진 둑에서 물 쏟아지듯 그 뒤를 따랐다. 나도 몰랐던 내 속의 분노가 누그러졌다. 그러고나서야 노무현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책으로 읽은 노무현은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었다. 강한 노무현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패가 초래한 타인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아주 작고 아름다운 인간 노무현이다. 그래도 아직은 기회가 있는 것 같아서, 시민 노무현으로 다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약한 노무현이었다. 약했기에 더욱 강한 적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매력적이었기에 반드시 무너뜨려야 하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3.
정의는 당연히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다. 정의는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이로우니까. 그런데 나는 옷을 팔아 기금을 모으면서도 참 힘들었다. 모두가 좋자고 하는 일인데도 그렇게나 힘이 들었다.
노무현은 오죽했을까. 단편적이고 사사로운 이익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도 강력했던 군부독재 시절, 인간 노무현은 정치인 노무현이 되었고, 그 결말은 죽음이었다.
내가 읽은 노무현의 자서전은 한 권 분량의 대자보였다. 한 인생이 온몸으로 지켜낸 촛불이었다.
한 인간이 몸 던져 지키려고 했던 정의가 그곳에 있었다.
그의 자서전 '운명이다' 에필로그에서 유시민은 이렇게 썼다.
그의 슬픔은 물과 흙, 나무와 바람, 태양과 별들에게 돌아갔다. 남은 재 한 줌이 부엉이바위가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곳, 작은 비석 아래 묻혔다. 그의 고통과 번민은 분향소에서 눈물을 쏟았던 사람들의 가슴으로 흩어졌다. 아주 작은 조각 하나가 내 마음에도 들어왔다. 살아 있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신호가 움직이는 사이버 공간에 가면, 변함없이 활기찬 그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노무현은 갔다.
노무현 갔는데, 노무현 정신이 이제서야 아른아른 내게 손을 내민다.
내가 정의를 눈물이 아닌 웃음으로 반기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